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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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화살은 결국 인간을 향할 것"…미세 플라스틱의 '역습'

1분당 트럭 한 대꼴 해양쓰레기로 / 올해까지 83억t 생산… 67년새 4000배 ↑/2050년 바닷속 양, 생선보다 무거울 듯/죽은 알바트로스 위장서 8kg 조각 나와
“바다 표면은 평온했지만 수면 밑은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독성 수프 같았다.”

영국에서 ‘플라스틱 없는 슈퍼마켓 만들기’ 운동을 하고 있는 벤 포글은 지난해 인도양을 잠수할 당시 목격했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바닷속에서 부유하고 있는 미세 플라스틱에 오염된 물을 마시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공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말했다. 그는 “플라스틱은 어디에 있든 해양 생물과 환경을 오염시킨다”며 “플라스틱은 무차별적으로 (인류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오래 가고 쓰기 편리한 물질의 대명사였던 플라스틱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3억t이 생산될 정도로 무분별하게 플라스틱이 배출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인간이 해양생물 등을 통해 플라스틱을 흡수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세 플라스틱이 인간 체내에 흡수된 뒤 신체에 미치는 피해 정도, 생태계 파괴 수준이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플라스틱은 미래의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플라스틱을 분자 형태로 만들어 연료로 활용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과도하게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소비 습관을 버리지 않으면 플라스틱이 초래하는 위기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플라스틱으로 뒤덮이는 지구

미국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플라스틱 생산량은 1950년 200만t에 불과했지만 올해까지 총 83억t이 생산돼 67년 만에 4000배 정도 증가했다. 이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50년에는 340억t의 플라스틱이 지구 곳곳에 쌓일 것으로 예측됐다.

우리가 눈으로 쉽게 찾을 수 없는 5㎜ 이하 미세 플라스틱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퍼지고 있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미세 플라스틱은 올해 1월 기준 전 세계 바다에 5조개가 존재할 것으로 조사됐는데, 1분마다 트럭 한 대 분량의 미세 플라스틱이 바다에 꾸준히 버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자연보존연맹(IUCN)은 바다에 있는 플라스틱의 15~31%는 미세 플라스틱이며 이 중 35% 정도가 가정에서 합성섬유를 세탁하면서 배출된다고 지적했다. 해양학자 아비가일 배로우스는 “세탁을 할 때 플라스틱 미세섬유가 떨어져 나오는데, 재킷 하나에서 25만여개의 미세 플라스틱이 나올 수 있다”며 “매일 미국 허드슨강에서 대서양으로 유입되는 미세 플라스틱이 3억개에 달한다”고 전했다.

올해 2월 현재 바다의 플라스틱 대 플랑크톤의 비율은 1대2 정도로 추정되는데 2050년이 되면 전 세계 모든 생선을 합친 것보다 바다 내 플라스틱이 더 무거울 것이란 관측이다. 바다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는 플라스틱은 해양생물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죽은 채 발견된 알바트로스 한 개체에는 3000여개의 플라스틱 조각(8㎏)이 위장에 들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인간이 한 번에 12개 피자를 먹은 것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다. 과도하게 플라스틱을 섭취한 해양생물은 먹이를 소화하지 못해 영양 부족으로 죽게 된다. 바다에 있는 새 10마리 중 9마리 내장에는 플라스틱이 들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텔레그래프는 지적했다.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없어 더 ‘위협적’

더 큰 문제는 먹이사슬 최상층부에 위치한 인간이 해양생물을 섭취하면서 미세 플라스틱을 체내에 고스란히 축적되고 있다는 점이다. 바다에 있는 플라스틱은 햇볕과 파도, 염분의 영향을 받아 부서지기 쉬운 상태로 변해 아주 잘게 쪼개지는데 이런 미세 플라스틱은 플랑크톤과 뭉쳐져 어류 등을 거쳐 인간에 전달된다. 벨기에 겐트대학교 등에 따르면 해산물을 주기적으로 먹는 영국인은 매년 1만1000여개의 플라스틱 조각을 체내로 흡수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체내에 들어온 플라스틱의 99%는 빠져나가지만 나머지 1%는 체내 조직에 머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2100년쯤이면 주기적으로 해산물을 먹는 사람은 매년 78만개의 플라스틱을 섭취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 독립 언론단체 ‘오르브 미디어’가 전 세계 수돗물의 83%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고 발표하면서 해산물 외에 다른 경로를 통해 인간이 지속적으로 화학물질을 섭취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플라스틱 다큐멘터리 ‘플라스틱 대양’을 만든 크레이그 리슨은 “플라스틱은 인간이 만든 물질 중 가장 오래가는 물질이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플라스틱은 어떤 모습으로든 지구상에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플라스틱은 인간의 건강을 악화시킬 것이란 추정만 있을 뿐 정확히 어떤 병을 유발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위협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수잔 조블링 브루널대 교수는 “서방 국가 성인의 92%는 체내에 플라스틱이나 화학물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함유량은 아이들의 경우 성인의 2배에 이른다”며 “지금까지 드러난 문제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유럽화학물질관리청(ECHA)은 플라스틱 제조 원료 중 하나인 비스페놀A(BPA)의 경우 인간의 내분비기관과 호르몬 체계를 교란시켜 암, 유산, 기형을 유발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전면 금지에 나서진 않았다. BPA는 독일 아동 599명 중 591명의 소변에서 검출되는 등 세계 인구의 90%가 체내에 갖고 있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화학물질이다. 콜린 젠슨 겐트대 박사는 “미세 플라스틱이 체내에 들어가 오랜 기간 머무르는 걸 알게 됐다”며 “이 플라스틱들이 염증을 일으키거나 독성물질을 생성하는지 파악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위기 해법은 ‘소비패턴 변화’

자연에서 스스로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 생산은 매년 늘고 있는 반면 재활용 비율은 낮아 대부분 해양 생태계에 축적되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플라스틱 70억t 중 9%만 재활용됐고, 12%는 태워졌으며 나머지 79%는 매립지나 자연에 그대로 버려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플라스틱을 연료로 사용하는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플라스틱에 경제적 가치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시장이 형성되면 자연스레 플라스틱 위기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워릭대학교는 플라스틱을 가장 기본적인 분자 수준으로 쪼개 플락스(Plaxx)라는 기름을 만드는 ‘재활용 기술’(Recycling Technologies)을 개발했다. 미국 해군과 일부 크루즈선도 비슷한 방식의 재활용 시스템을 가동해 선원이나 승객이 버린 플라스틱을 5000도 이상으로 가열, 가스로 활용하고 있다. SCMP는 “플라스틱을 활용해 가스를 만드는 건 작은 공장에서도 가능하고, 오염물질도 배출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하지만 세계 폐플라스틱의 56%를 수입했던 중국은 지난 7월 세계무역기구(WTO)에 폐기물 수입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히고, 홍콩은 2014년 “플라스틱 재활용 무역 시장은 공급과 수요의 불안정함, 각국 정부 정책 등의 영향으로 매력적이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경제 원리에만 의존해서는 위기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만만치 않다.

결국 불필요한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고 각국이 규제 정책을 동원해 재활용률을 높이는 노력이 궁극적인 해결책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매년 1조개의 비닐봉지가 생산되지만 평균 12분만 사용된 후 버려지고, 소비된 의류 10벌 중 4벌이 한 번 입거나 전혀 입지 않은 채 버려지는 상황(2015년 독일 조사 결과)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영국이 2015년 비닐봉지에 5페니의 부가세를 매긴 후 사용량이 85억개에서 25억개로 줄고, 독일이 플라스틱병을 넣으면 보증금을 내어주는 기계 ‘플라스틱병 은행’을 슈퍼마켓에 설치해 재활용률을 98%로 높인 것과 같은 성공 사례를 각국 정부가 도입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뉴욕 주립대 쉐리 메이슨 교수는 “정수를 한 물에서도 플라스틱이 검출될 정도로 플라스틱은 어디에나 있다”며 “우리가 정말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먼저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 사람들이 듣고 싶은 대답은 아니겠지만 이게 불편한 진실이다”고 말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