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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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금강산까지 내달리는 그날을 기다리며…

평화를 염원하는 땅, 철원
노란물결 남녘땅 저 너머 뿌연 안개에 가린 북녘, 길이 아닌 곳은 발걸음 내디딜 수 없는 조심스러운 곳
지뢰꽃길·생태숲길 함께 걸으며… 따사로운 가을볕 온전히 만끽할 수 있는 날 오기를…
빨갛게 단풍이 들기 전 가을의 색은 노란색이다. 날이 따뜻한 남쪽부터 곡식은 먼저 익지만, 벼는 다르다. 먼저 노랗게 익기 시작하는 것은 북쪽부터다. 날이 춥기에 남쪽보다 먼저 모내기를 해, 추수도 더 빨리 한다. 아직 초록빛이 가시지 않은 남쪽과 달리 강원 철원의 평야는 황금 물결이 넘실대고 있다.

노랗게 물든 철원의 모습을 보려면 소이산에 오르면 된다. 철원평야 가운데에 우뚝 솟은 해발 352.3m의 나지막한 산이다. 강원도 다른 산들이 1000m를 넘는 것을 감안하면 구릉 정도로 불리는 것이 적당하다. 평야지대가 펼쳐진 철원에선 이 정도만 돼도 충분하다.

소이산은 6·25전쟁 이후 미군의 군사기지로 사용돼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그러다 2012년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이라는 이름으로 일반에 길을 열었다. 한반도의 슬픔을 간직한 지뢰밭이 이제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꽃길이 된 셈이다.

그래도 전쟁의 상흔은 남아 있다. 길이 아닌 데를 함부로 가서는 안 된다. 개방된 통로 외에는 사고의 위험이 큰 곳이다. 산을 오르다 보면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북한의 대남방송이 들린다. 전방이다. 아직도 산책길을 제외한 구간은 지뢰지대다.
 
그렇다고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정비된 길만 따라가면 위험하지 않다.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은 5㎞가 채 안 된다. 지뢰꽃길(1.3㎞), 생태숲길(2.7㎞), 봉수대 오름길(0.8㎞)로 구분된다. 지뢰꽃길은 지뢰안전지대와 GOP를 연상케 하는 길이고, 생태숲길은 자연 그대로의 오솔길을 걷는 길이다. 무엇보다 소이산의 백미는 봉수대 오름길이다. 오름길에 가는 길엔 예전 미군들이 썼던 막사와 초소를 볼 수 있다. 막사 등은 6·25전쟁과 관련된 전시시설로 이용되고 있지만 음침함은 여전하다. 막사를 지나면 정상이다. 정상에 오르면 철원평야와 함께 북한 쪽의 모습도 조망할 수 있다.

정상에서 보면 시야를 가리는 이렇다 할 장애물이 없다. 우리 땅은 한창 가을을 알리는 노란빛이 물결을 치고 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저 멀리 산봉우리는 안개 때문인지 희멀겋게 보인다. 청명한 가을 하늘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은둔의 왕국과 같은 북녘땅은 뿌옇게 가려진 모습이 오히려 더 어울릴 듯싶다.

철원엔 소이산과 비슷한 높이의 산이 또 하나 있다. 하지만 산이라 불리지 않고 고지라 불린다. 395m 높이의 백마고지다. 전쟁 당시 24차례나 주인이 바뀐 그곳이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0월 15일까지 10일간 백마고지를 놓고 밤낮을 가리지 않은 전투가 벌어졌고, 결국 국군이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다. 전투 후 수목이 다 쓰러져버린 처참한 형상이 마치 누워 있는 백마처럼 보여 백마고지라 했다는 설과 참전 당시 미국군 장교가 외신기자의 질문에 ‘화이트 호스 힐(white horse hill)’이라 대답한 데서 비롯됐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백마고지는 직접 갈 수 없다. ‘백마고지전투전적비’를 찾으면 철원평야 건너편의 백마고지를 바라볼 수 있다. 
태극기가 좌우로 펄럭이는 언덕길을 따라 오르면 당시 희생된 국군의 영령을 추모하는 백마고지위령비가 서 있다. 위령비를 지나면 백마고지 조망처다.

철원엔 의도치 않게 남북이 합작으로 건설한 다리도 있다. 갈말읍 내대리와 동송읍 장흥리 사이를 흐르는 한탄강 협곡을 가로질러 놓여 있는 승일교다. 그냥 오래된 다리로 보일 수도 있지만, 다리를 보면 가운데를 기준으로 왼편과 오른편 형태가 다르다. 철원은 해방 후 북한 땅이었다. 당시 북한은 동송읍 쪽부터 다리 건설을 시작해 절반쯤 놓았다가 전쟁이 터졌고, 이후 철원은 남한이 차지하게 된다. 철원 수복 후 남한은 갈말읍 쪽부터 다리를 놓아 지금의 모습이 됐다. 이에 다리 이름을 이승만의 승자, 김일성의 일자를 따서 승일교(承日橋)라 불렀다는 얘기가 있다. 전쟁 당시 한탄강에서 전공을 세우고 전사한 고 박승일 연대장의 공을 기리기 위해 이름을 붙였다고도 한다.

철원에선 북한의 흔적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이 철원 주민들을 강제 동원해 지은 노동당사는 소련식 공법으로 완공된 무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지금은 뼈대만 남은 채 벽에는 총탄 자국들이 선명히 남아 있다. 또 남방한계선을 넘어 비무장지대 근처를 들러볼 수 있는 안보투어에는 1975년 발견된 제2땅굴이 포함 돼 있다.

땅굴의 높이는 170㎝ 내외로 헬멧을 쓰지 않으면 다칠 수 있다. 승용차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제법 넓은 공간의 땅굴엔 다이너마이트 폭발 흔적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땅굴을 둘러본 후 북한을 코앞에서 볼 수 있는 평화전망대와 월정리역에 들른다. 월정리역을 지나는 기차는 금강산까지 달렸지만, 이젠 녹슨 채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다.

철원=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