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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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독립이냐, 자치권 확대냐 … 카탈루냐 10월 1일 ‘운명의 날’

주민투표로 소환된 스페인의 ‘불편한 역사’
‘정열의 나라’ 스페인에서 ‘시한폭탄’ 폭발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카탈루냐의 분리독립 주민투표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시한폭탄의 초침에 가속이 붙었다. 스페인 국민이 애써 외면하던 ‘불편했던 역사’가 오는 10월1일 주민투표를 계기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진실과 현실’이 되는 국면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주민투표가 실제로 강행될지, 강행된 후 결과는 또 어떻게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향후 스페인 정국에 핵폭탄급 파장을 불러올 전망이다.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이번은 다르다”며 주민투표 강행에 사활을 걸고 있고, 스페인 정부는 카탈루냐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끝까지 저지하기 위해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오는 10월1일로 예정된 카탈루냐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앞두고 스페인 마드리드, 바르셀로나는 물론 해외 스코틀랜드 등에서도 연일 카탈루냐의 분리독립 쟁취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바르셀로나=AFP연합뉴스

◆‘면적은 10% 이하, 경제력은 20% 이상’의 고질적인 불만

스페인 동북부에 있는 인구 750만명, 면적 3만2114㎢에 주도가 바르셀로나인 카탈루냐는 스페인 전체 면적의 10%가 안 되는데도 스페인 경제의 20%를 차지하는 부유한 지역이다. 바르셀로나는 1992년 하계올림픽을 치렀다. 문화·역사·언어가 수도 마드리드가 중심인 중남부 스페인과 다르다는 인식이 강해 300년 넘게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카탈루냐는 스페인 경제를 자신들이 이끌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지중해와 피레네산맥을 거느린 지리적 이점과 바르셀로나라는 세계적 관광지를 바탕으로 관광산업이 번창했고, 생명공학·건설·제약 등 다른 산업의 발전도 타 지역을 크게 넘어서 있다. ‘경제적 자신감’은 분리독립 추진력의 가장 든든한 기반이다.
독립 열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다. 스페인이 부유한 카탈루냐 지역에서 세금을 걷어 실업과 빈곤에 허덕이는 다른 지역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카탈루냐가 스페인 중앙정부에 납부하는 세금만 매년 160억유로(약 21조7000억원)에 이른다. 지역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8%에 달하는 돈을 고스란히 중앙정부에 갖다 바친다는 피해의식이 팽배하다.

2012년 국민당 정부의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가 카탈루냐에서 중앙정부가 가져가는 돈을 줄여 달라는 요구를 경제위기를 이유로 거부하면서 갈등은 폭발했다. 카탈루냐를 달래기 위해 스페인 의회가 나서 자치권을 확대하는 정치적 타협안을 만들어 갈등이 봉합되는가 했더니 스페인 헌법재판소가 2010년 확대된 자치권에 무효 판결을 내리면서 타협안은 물거품이 됐다.

자치권 확대방안은 카탈루냐 의회는 물론 스페인 의회에서도 통과된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스페인 헌법재판소 결정의 배후에 집권당이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카탈루냐의 민심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스페인과 카탈루냐 간 복잡한 역사는 차치하더라도 카탈루냐가 스페인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다는 점이 카탈루냐는 분리독립 강행을, 스페인 정부는 필사의 저지를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다.
카탈루냐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주도하는 카를레스 푸지데몬 자치정부 수반이 최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집회에서 “중앙정부의 투표 철회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주민투표는 반드시 치르겠다”고 연설하고 있다.
바르셀로나=EPA연합뉴스

◆어떤 결과가 나와도 카탈루냐에 주민투표는 능사

카탈루냐의 분리독립 주민투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4년 11월 아르투르 마스 당시 주지사가 카탈루냐의 분리독립을 묻는 비공식 주민투표를 진행했고 당시에는 유권자 540만명 중 절반에 못 미치는 225만명이 참여했지만 참여자의 81%가 찬성표를 던졌다. 스페인 정부는 투표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마스 전 주지사를 불복종 혐의로 기소했다.

그동안의 분리독립 찬반 주민투표가 실제 효력이 없는 비공식 투표에 그쳤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찬성이 과반이면 독립을 선포하고 당장 국경통제를 단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스페인 정부는 투표 자체를 저지하는 데 막대한 경찰력을 투입하는 등 총력전에 나서고 있고, 독립주의자들은 정치적 명운을 걸고 중앙정부에 맞서고 있다.

주민투표를 하더라도 실제로 분리독립 찬성 여론이 더 많이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카탈루냐의 여론은 분리독립에 찬성이든 반대이든 일방적으로 쏠려 있지 않다.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지난 7월 의뢰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9.4%가 분리독립에 반대의사를 밝혔고 찬성은 41.1%로 나타났다. 그러나 스페인 정부가 주민투표 자체를 위헌이자 불복종 행위로 규정한 것과 달리 응답자의 70%는 분리독립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주민투표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번에도 카탈루냐 분리독립이 관철될지는 불투명하다. 주민투표가 시행될 수 있을지, 시행되더라도 그 결과가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안갯속이다. 스페인 헌법재판소는 2014년 분리독립 투표 때 이미 ‘카탈루냐 독립은 위헌’이라고 선언한 상태다. 이번에 찬성표가 더 많이 나온다고 해도 실제로 독립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래도 찬성표가 더 많이 나오면 정치적인 명분을 얻을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카탈루냐에서 중앙정부에 자치권을 더 많이 요구할 수 있게 된다.

◆경찰 증원, 부패 수사, 투표용지 압수…압박 카드 총동원

스페인 정부는 주민투표를 저지하기 위해 다양한 압박 카드를 꺼내들었다. 독립 추진 중단과 자치권 확대를 교환하는 협상안을 제시하면서도 수천명의 경찰력을 카탈루냐로 급파해 주민투표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스페인 내무부는 ‘독립 추진으로 불안감이 높아진 카탈루냐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이유로, 하지만 사실은 ‘금지된 주민투표가 진행되지 못하도록’ 경찰관을 증원했다. 현지 언론들은 추가 인원을 3000∼4000명가량으로 추산하고 있다. 주민투표 저지를 위해 카탈루냐에 배치된 국가직 경찰관은 기존의 5000명에 더해 8000∼9000명에 이르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이들에게 내달 5일까지 휴가·휴무 금지령도 내렸다.

스페인 경찰은 카탈루냐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주도하는 카를레스 푸지데몬 자치정부 수반을 겨냥한 부패수사에도 착수했다. 경찰은 최근 카탈루냐 지로나의 상수도회사 본사 건물 등지에서 동시다발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지로나는 카탈루냐 제1도시인 바르셀로나 북쪽 100㎞ 떨어진 곳에 있는 도시로, 푸지데몬 자치정부 수반이 2011∼2016년 시장을 지낸 곳이다. 스페인 경찰은 푸지데몬 자치정부 수반이 지로나 시장 재임 시절 공공 상수도 계약과 관련해 부정청탁과 특혜제공, 사기 관련 혐의를 포착해 수도회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스페인 정부는 또 카탈루냐 자치정부에 투표강행 계획을 철회하지 않으면 공공부문의 예산지출 권한을 몰수하는 것은 물론 분리독립 세력의 최고 지도자인 푸지데몬 자치정부 수반을 체포하겠다고 경고했다. 또 최후의 수단으로 자치권 몰수까지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카탈루냐 지역에서 주민투표 고지 우편물 4만5000개와 투표용지 1000만장, 포스터와 전단지 150만장 등을 압수하고, 주민투표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에 나서면서 실제로 투표가 진행되지 못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이밖에 스페인 중앙정부는 주민투표를 저지하기 위해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경찰 지휘권을 제한하는 초강수도 뒀다.

스페인 정부의 집요한 방해공작에도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주민투표는 반드시 치른다는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푸지데몬 자치정부 수반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탄압이 진행되고 있지만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비상계획을 동원해서라도 주민투표는 반드시 치르겠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스페인 외무장관을 역임한 하비에르 솔라나 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은 최근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양측의 갈등이) 통제할 만한 수준을 이미 벗어났다. 정치인들이 싸우면서도 게임의 법칙을 존중하던 정상적인 상황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상혁 선임기자 nex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