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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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현장] 무분별한 개발·오폐수 유입… 세계적 연안습지 전남 갯벌 ‘몸살’

간척사업 남발 부작용 심각
“방조제 건설 등 무분별한 개발로 생태계의 보고인 갯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전남 서·남해안환경단체와 바다 갯벌을 생활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전남 순천·여수지역 어민들의 한결같은 아우성이다.

1일 서·남해안환경단체와 함께 전남 여수시 여자만 안쪽 깊숙이 위치한 두봉마을, 순천과의 경계지역으로 민물과 짠물이 만나는 기수역(汽水域)을 찾았다. 생태계의 보고인 이곳은 전남갯벌 1017.4㎢ 가운데 한 곳으로 순천만·보성벌교 연안습지보호지역과 함께 광활한 갯벌 자원을 지니고 있다. 여수의 시작인 이곳은 저물녘 노을이 아름답다.

마을회관에 들어서자 노인들이 수령이 200여년 된 팽나무 아래서 쉬고 있었다. 대부분 여성으로 예전에는 갯일을 할 시간이지만 나이가 들어 나무그늘에서 소일거리를 하고 있다. 참꼬막을 비롯한 새꼬막, 바지락 등을 잡으려고 갯벌을 누비던 시절은 아련한 추억이다. 지금은 새꼬막 양식으로 96㏊에 달하는 마을 면허 지역에서만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이마저도 나이 든 어르신들만 살고 있어 관리가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어민 생활터전 사라지고… 지난해 초 전남 함평만 일대에서 방조제 등 각종 편의시설들이 들어서면서 갯벌이 사라지고 있다.
서남해환경센터 제공
이곳에는 1965년 버스 개통과 함께 방조제 등 각종 편의시설들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수산자원이 고갈되기 시작해 바다에서는 새꼬막 외에 특별한 수확이 없어 주민들은 논과 밭농사로 전환했다. 이마저도 멧돼지 등 산짐승들 때문에 피해를 보기 일쑤다. 기수역 일대는 예전엔 조개류 등을 상당량 수확했는데 지금은 아예 갯벌에서도 찾기 힘들다고 전했다. 바다생물의 보고인 여자만에서 수년 새 조개류 등이 사라져 가는 것을 마을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체감하고 있다.

다행히 이곳은 연안습지 깃대종으로 알려진 법적 보호종인 갯게와 대추귀고둥, 붉은발말똥게, 흰발농게가 열악한 환경에서도 서식하고 있다. 기수우렁이 둥근얼룩총알고둥, 총알고둥, 갯고둥, 얼룩비틀이고둥, 흑좁쌀무늬고둥 갈색새알조개, 아기반투명조개, 갯지렁이, 방게, 붉은발사각게 등 다양한 저서생물들도 살고 있다. 염생식물로는 갯질경이, 큰비쑥, 해홍나물, 천일사초, 방석나물, 갯잔디, 갈대, 나문재, 가는갯능쟁이, 순비기나무 등이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하고 있다. 그러나 무분별한 공유수면 매립과 연안 구조물 허가 등으로 이들 해양생물이 얼마나 버티고 살아남을지는 미지수다.

칠면초 군락지 훼손되고… 최근 들어 순천만 바닷가를 붉게 물들인 칠면초 군락지가 바다오염 등으로 사라지고 있다.
한승하 기자
한해광 서남해환경센터 센터장은 “전남 바다는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의 분기점이어서 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며 “해류의 교차나 계절풍 등의 영향으로 다양한 어족자원이 풍부한 세계적인 연안습지인 전남 갯벌을 보존하려면 지금부터 연안 매립을 멈추고 갯벌 살리기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생태계 천혜의 자원으로 높은 보전가치가 있는 순천갯벌의 아픔도 크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순천갯벌은 다양한 생물자원과 사시사철 변하는 아름다운 갈대숲 등의 조망 때문에 탐방객들이 대거 몰리며 생태계가 훼손되는 등 피해가 나타났다. 염전 간척사업으로 바닷물 유입이 차단돼 인근 마을에 오·폐수가 흘러들어 심한 악취가 풍기는 등 부작용도 발생했다.

환경운동가들은 “최근 들어서는 순천만 바닷가를 붉게 물들인 칠면초 군락까지 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순천시 별량면 고장마을에서 어업을 하는 유모(62)씨는 “순천만 짱뚱어 어획량은 30년 전과 비교하면 3분의 1 정도, 10년 전보다는 거의 절반이 줄었다”며 “바다가 전반적으로 황폐화하면서 어족자원이 고갈돼 어민의 생활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순천시는 최근 갯벌 생태 복원을 위해 순천만 인근에 방치된 염전과 양식장을 생태공간으로 되돌리기 위한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순천시는 순천만 인근 42만㎡ 규모의 폐염전을 역간척 작업으로 갯벌로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기본계획을 마련한 데 이어 올해에는 순천시 별량면 일대 폐염전 부지를 매입했다.

내년에는 본격적인 공유수면 공사를 해 갯벌 복원작업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이곳은 1960년대 염전을 조성하기 위해 간척사업을 한 뒤 바닷물 유입이 차단되면서 여름철이면 인근 마을에 오·폐수가 흘러들어 심한 악취가 날 정도로 부작용이 심했던 지역이다.

순천시는 갯벌 탐방객 인원 수도 제한했다. 순천만 갯벌을 찾는 탐방객이 급증하면서 갯벌이 훼손되자 하루 입장객을 1만명으로 정하고 인터넷 예약제를 시행하는 등 다양한 갯벌 살리기 방안을 펼치고 있다. 다행히 순천갯벌은 높은 자정능력으로 옛 모습을 서서히 되찾아나가고 있다. 역간척 사업을 진행한 이후 순천갯벌은 썰물 때 짱뚱어뿐 아니라 칠게 등 청정갯벌에서만 볼 수 있는 자생생물이 갯벌을 뛰어다닌다.

순천시 관계자는 “순천갯벌은 세계 5대 연안습지로 등록될 만큼 생태적 보전가치가 높다”며 “순천갯벌의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여수·순천=한승하 기자 hsh6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