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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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워싱턴 정치 혁파·美 우선주의 외교 … ‘트럼피즘 쇼크’

대선 승리 1주년 맞는 트럼프 / 기존 정치 부정 '아웃사이더'… 주류 언론 공박 '트위터 정치'… 국익 우선 '아메리카 퍼스트'
미국 100대 언론사 중에서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당시 후보를 지지한 언론사는 2곳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기관도 줄곧 트럼프 후보의 대선 패배를 예고했다. ‘사기꾼 힐러리’를 물리치겠다는 그의 주장은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들렸다. 그런 예측은 빗나갔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최초의 ‘아웃사이더’ 대통령으로 백악관을 접수했다.

한·중·일 등 아시아 순방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대선 승리 1주년을 맞는다. ‘워싱턴 정치’ 혁파를 내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안팎에 파장을 일으켰다.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기조로 이민 문호는 닫고 국제사회엔 압박을 강화했다. 의지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자주 국정 구현에 실패했다.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러시아 스캔들), 의회와의 불협화음, 언론의 비판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면한 현실을 보여준다. 정치전문매체인 폴리티코는 전문가의 말을 빌려 트럼프 대통령의 재임 첫해는 마치 재임 8년째와 같았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인 중심의 30∼40% ‘콘크리트 지지층’과 ‘트위터 정치’를 출구로 삼고 있다.

◆국내에선 ‘워싱턴 정치’ 타파 주창… 이민 문호는 닫고, 소통은 트위터로

트럼프 대통령은 출마 선언 직후부터 기존의 정치 질서를 부정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그게에 훌륭한 도구이다. ‘오바마 지우기‘와 ‘힐러리 부정’에 나섰지만, 때론 ‘독’으로 돌아왔다. 사실상 1호 공약이었던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 폐지 시도만 해도 그렇다. 공화당 지도부는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4차례에 걸쳐 오바마케어 폐지 법안을 상원 표결에 부쳤지만 이탈표 발생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같은 당인 공화당 소속 일부 의원과 지속적으로 갈등했다. 2008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반트럼프 의원진영’을 대표하고 있다.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과 제프 플레이크 의원 등 일부 중진은 내년 중간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트럼프 시대’에 불만을 강하게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ABO’(Anything but Obama·오바마만 아니면 된다) 현상은 강화된 이민정책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2015년 6월 출마선언 당시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하며 이민에 적대적인 성향을 노골화했다. 취임 이후에도 3차례에 걸쳐 ‘반이민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이슬람과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일부 국가 국적자 비자 발급을 거부하고 입국을 거절하는 대통령 명령이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주 등 일부 주정부와 연방항소법원이 트럼프 정부의 행정명령에 반기를 드는 결정을 내려 연방대법원의 최종 결론을 기다리고 있다. 대선 경쟁자인 클린턴 전 장관은 ‘러시아 스캔들’이 거론될 때면 트럼프 대통령이 소환하는 인물이다.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팀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 강도가 높아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클린턴 전 장관의 ‘이메일 스캔들’을 거론했다. 이는 러시아 스캔들을 이메일 스캔들로 덮으려는 시도라는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각에서는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 해임과 관련해 사법방해 등의 혐의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설이 제기되고 있다.

대선 승리 1주년을 앞둔 5일 워싱턴포스트(WP)와 ABC방송은 공동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37%에 불과하다며 70년 만의 최저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일련의 국정 실패로 언론의 비판이 고조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언론을 ‘가짜 언론’이라며 공박해 왔다. 그러면서 트위터 정치를 지속하고 있다. 대선 이후 한때 트위터가 아닌 기자회견 등을 통해 국정 현안을 설명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그의 ‘트위터 사랑’은 이어지고 있다. 30∼40%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겨냥한 대중집회도 빈번하게 열고 있다. 총기규제와 백인 우월주의 논란에서도 지지층을 염두에 둔 발언을 내놓곤 한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등 야당 지도부가 대통령이 통합의 리더십보다는 특정 지지층을 상대로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배경이다.

◆외교에선 ‘미국 우선주의’ 가동… 동맹에도 ‘리더십’ 아닌 ‘힘’ 선보여

트럼프 대통령의 국익 우선주의 기조는 외교 현장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취임 직후 이웃나라와 맹방을 방문하며 미국의 리더십을 다졌던 전임자들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100일이 지나서야 해외 순방에 나섰다. 첫 순방지는 지난 5월 찾은 중동과 유럽이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 회원국에 분담금 증액을 요청하고,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예고하면서 동맹의 우려를 키웠다. 2개월 뒤 독일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해서도 파리협정 탈퇴를 재고하라는 국제사회의 요청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9월 유엔 총회에서도 회원국에 분담금 증액을 요구했다. 오바마 정부의 성과로 꼽히는 이란 핵 협정 및 쿠바와의 외교관계 복원에도 부정적인 시각으로 접근했다. 지난달엔 이란 핵 협정 준수 불인증을 선언했으며, 쿠바에 강경 정책을 사용할 여지를 남겨뒀다.

무역 상대국에 통상 파고도 높였다. 당선 직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선언했으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폐기와 한·미 FTA 재협상 위협을 가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행보로 외교무대에서 미국이 지녀온 독특한 리더십은 훼손되고 있다. CNN방송은 1990년 초반 냉전 종식 이후 트럼프 정부처럼 짧은 기간에 미국의 이미지를 바꾼 경우도 흔치 않았다고 평가했다.

워싱턴=박종현 특파원 bal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