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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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집권 4기 닻 올린 아베…'전쟁 가능 국가' 노골화

日 자민당 개헌 재시동/헌법 9조 전쟁불가 1·2조항 둔채/ 3항 신설 자위대 존재 명기 추진/‘첫 개헌 성공’ 정치적 유산 획득 후/ 2조항 삭제 ‘전쟁 가능한 국가’로/ 측근 호소다 추진본부장에 임명/ 연내 개헌안 마련 내년 국민투표/여당 내도 반대론…논의 난항 예고
지난달 일본 중의원 총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의 압승을 이끈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로 바꾸기 위한 헌법 개정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자신이 속한 당 내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의 회장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의원을 당 헌법개정추진본부장으로 앉히며 개헌 논의를 자신이 주도하겠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당 내에서 ‘아베 개헌 구상’에 대한 반대의견이 나오는 데다 연립여당 파트너인 공명당도 개헌에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어 야당들과의 논의는 물론이고 여당 내 논의조차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자위대 합헌화” 핑계로 헌법 9조 무력화 시도


어느 나라든 필요에 따라 헌법을 개정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수차례 개헌을 했다. 하지만 일본의 개헌 움직임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국이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개헌 목적이 ‘전쟁 가능한 일본’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연합군최고사령부(GHQ)의 주도로 만든 현재의 헌법을 단 한 차례도 개정하지 않았다.

일본 헌법은 9조 1항(전쟁 포기)과 2항(군대 보유 금지, 교전권 불인정) 때문에 ‘평화헌법’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우익 세력들은 헌법 9조를 없애 패전국 꼬리표를 떼고, 일본인의 손으로 ‘보통 국가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민당은 지난달 총선거 때 헌법에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겠다는 것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아베 총리는 선거기간 지원유세 때 “동일본대지진 때 목숨을 걸고 애쓴 자위대에 ‘너희는 (존재가) 헌법 위반이지만 당분간 목숨을 걸어라’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자위대는 사실상 군대 역할을 하고 있어 ‘헌법 9조’ 위반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일본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존재인 자위대의 위헌 논란을 없애기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는 게 아베 총리의 주장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개헌 구상은 헌법 9조 1항과 2항을 그대로 둔 채 3항을 신설해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한다는 게 골자다. 그는 지난 5월 이 같은 독자적 개헌 구상을 밝힌 바 있으며,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도 이를 바탕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 구상대로라면 9조 2항과 3항이 충돌하게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가 헌법 9조 개정에 대한 일본 국민 다수의 거부감을 고려해 1단계로 ‘첫 개헌 성공 총리’라는 정치적 유산에 초점을 맞추고, 2단계로 논란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9조 2항을 삭제해 최종 목표인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의 꿈을 이루려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르면 내년 국민투표…여당 논의 난항 가능성


아베 총리는 ‘개정 헌법을 2020년 시행하겠다’는 개헌 스케줄을 제시했으나 ‘사학스캔들’로 지지율이 급락하자 “개헌 스케줄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며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가 일을 추진하는 속도를 보면 아베 총리의 개헌 스케줄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민당은 오는 16일 당 내 논의를 재개해 다음달 중 개헌안 초안을 마련하고, 이를 내년 초 소집되는 정기국회 때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이후 국회 개헌안 발의와 그 이후 60일 이상 180일 이내에 실시되는 국민투표의 시나리오는 크게 3가지다. 가장 빠른 것은 내년 중반 정기국회 발의 후 그해 연말 국민투표 실시다. 이와 함께 내년 가을 임시국회 개헌안 발의 후 2019년 봄 국민투표, 2019년 초 정기국회 개헌안 발의 후 그해 여름 참의원 선거와 동시 국민투표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개헌세력’은 국회 개헌안 발의에 필요한 ‘중·참의원 각각 3분의 2 이상’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국회 발의 후 실시되는 국민투표에서 유효 투표의 과반 찬성이 있으면 가결된다.

하지만 여당 내에서도 ‘아베 개헌 구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아 논의 과정이 순탄치 않을 가능성도 있다. 자민당 내에는 ‘포스트 아베’ 후보로 꼽히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을 중심으로 “9조 2항을 전면 개정해 ‘국방군’을 창설한다”는 내용을 넣겠다는 자민당의 2012년 개헌안 초안을 중심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단체 ‘창가학회’를 지지 모체로 둔 공명당은 전쟁 가능한 일본을 지향하는 아베 총리 주도의 개헌 움직임을 우려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공명당 대표는 12일 라디오프로그램에 출연해 “자민당의 당시(당의 기본 방침)이므로 개헌에 대한 결과를 어떻게든 내고 싶다는 접근은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며 “숫자로 결판을 내는 과제가 아니므로 조급하게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호소다 헌법개정추진본부장은 지난 10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 내 논의를 심화하겠지만 이견이 남더라도 당 차원의 개정 원안을 결정할 가능성이 있음을 언급했다. 또 공명당과의 협의에 대해서는 “사전에 협의해서 일체화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며 ‘필수’가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 여차 하면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도쿄=우상규 특파원 skw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