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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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산 채로... 혹은 일부만... 그렇게 팔려나간다

건강에 좋다고 … 애완용으로 … 야생동물 밀수 판친다/ 생물종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 사냥/ 남아프리카 코뿔소 수 7년새 80% ↓/ 여러나라 경유하며 당국 감시 회피/ 아예 현지서 가공해 제품 만들거나/ 새끼 잡으려고 가족 모조리 몰살도
“새끼 2마리, 각각 7500달러(약 815만원), 특가.” 케냐에 거주하면서 영장류 밀수범을 추적하고 있는 대니얼 스타일스(72)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서 새끼 오랑우탄을 판다는 광고를 발견했다. 이메일로 오랑우탄 2마리를 사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자 자신을 태국 방콕에서 사는 톰이라고 소개한 사람이 즉시 거래조건을 담은 답장을 보내왔다. 멸종위기 상태인 오랑우탄과 같은 영장류를 사고파는 행위는 불법이지만 그는 SNS를 중심으로 영장류 밀수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빼앗긴 영장류’의 저자인 그는 “사체인 상아, 코뿔소 뿔, 호랑이 뼈는 물론 살아있는 영장류 새끼 밀수도 성행하고 있다”며 “밀수범들의 범죄 행태를 분석해보면 마피아는 아마추어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불법 야생동물 밀수가 전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수십년간 진행된 밀렵으로 코뿔소 등 멸종위기종들이 늘었지만 오히려 개체 수 하락에 따라 희소성이 커져 가격이 오르면서 범죄 조직이 야생동물 밀수에 뛰어드는 등 범죄 규모가 커지고 있다. 또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한 스타일스의 사례처럼 SNS를 이용하거나 살아있는 생물을 거래하는 방식의 새로운 밀수 방식도 속속 보고되고 있다. 야생동물 밀수는 해당 개체 수를 멸종시키며 공공보건 등의 측면에서 인간에게도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범죄행위지만 국가 간 공조 부족, 낮은 처벌 수위 등 성긴 규제 환경과 맞물리면서 확산하고 있다.

◆야생동물 밀수 실태와 원인은

27일 야생동물 밀수 범죄를 감시하는 국제 시민단체 ‘TRAFFIC’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밀렵 행위로 7100마리의 코뿔소가 죽은 것으로 확인됐다. 연도별로 2013년 1000마리, 지난해 1160마리의 사체가 확인되는 등 2010년 이후 남아프리카 지역 전체 코뿔소의 80%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집행위원회에 따르면 밀수를 위해 살해된 아프리카코끼리 개체 수는 10년 전 대비 현재 약 2배 증가했고, 적발된 상아는 3배 정도 늘었다. 야생의 호랑이 개체 수는 한 세기 만에 10만마리에서 현재 3500여마리 정도로 대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수마트라 호랑이 사망 원인의 78%는 밀수를 위한 불법 밀렵 때문인 것으로 추정됐다.

야생동물 밀수 하면 떠오르는 이런 동물 외에도 밀렵은 종을 가리지 않고 진행 중이다. 세계자연기금(WWF)이 지난 40년간 포유류, 조류, 양서류, 어류 중 대표 생물 1만종을 선정해 개체 수를 측정한 결과 52%가량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자연 상태 생물종의 멸종 속도에 비해 1000~1만배 빠른 것이다. WWF는 “거주지가 사라진 것도 원인으로 꼽히지만 밀수를 위한 사냥과 밀렵이 이런 비극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야생동물 밀수가 증가하는 이유는 뭘까. 야생동물 밀수로 짭짤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반면 처벌되는 사례가 적고, 건강 등의 목적으로 야생동물을 원하는 수요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연합환경범죄대책기구(EFFACE)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야생동물 밀수 규모는 약 200억달러(약 21조7000억원)로 추산된다. 밀수 항목별 가격을 보면 코뿔소 뿔은 ㎏당 4만유로(5160만여원), 호랑이 뼈는 ㎏당 900유로(116만여원), 가공되지 않은 상아는 ㎏당 620유로(80만여원)에 판매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밀수 시장에서 멸종위기란 딱지가 붙으면 가격이 치솟는데 희귀 앵무새 한 쌍은 5만유로(6500만여원)에 판매되기도 했고, 고릴라 새끼 한 마리는 25만달러(2억7000만여원)에 달한다. 밀수 시장의 소비자들은 주로 건강 증진 및 미용, 패션 등의 목적으로 야생동물을 찾는데 최근에는 애완용 소비도 늘고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애완용 도마뱀 밀수가 많고, 남미에는 부활절에 하얀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믿음에 근거해 바다거북 밀수가 폭증한다.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밀수되다 압수된 벵갈 호랑이 새끼 한 마리가 지난달 2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야생동물 밀수 반대 행사에서 사육사와 함께 놀고 있다.
◆밀수로 죽는 동물들

야생동물 밀수는 공항 세관 등의 눈을 피해 음성적으로 이뤄진다. 문제는 밀렵과 밀수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대다수 동물들이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해 죽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남미의 한 밀수업자는 “100마리의 앵무새, 도마뱀 중에서 밀수 과정 중 살아남는 개체는 불과 5~10마리밖에 안 된다”며 “앵무새의 경우, 동물원 소속 앵무새라는 것을 증명할 목적으로 야생 앵무새에 링을 끼우는데 이것 때문에 다리가 부러지는 경우가 많다”고 실토했다. 오랑우탄과 같은 영장류는 밀수가 어려운 성체 대신 새끼를 거래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밀수업자들은 새끼 한 마리를 생포하기 위해 가족 전체를 몰살하기도 한다. NYT는 “성체는 다이너마이트처럼 난폭해 밀수가 어려워 새끼를 노린다”며 “작은 공이나 기내용 가방에 새끼를 구겨넣은 사례가 이집트에서 적발되는 등 밀수는 영장류 전체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전했다. 또 뱀, 거북, 열대어, 앵무새가 마약 운반에 활용되고, 운반 과정에서 죽는 경우도 보고되고 있다. 앵무새의 경우 90%가 밀렵 또는 밀수 과정 중에 죽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밀수업자들의 수법도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TRAFFIC이 456건의 야생동물 밀수 사례를 분석한 결과 밀수업자들은 밀렵 장소에서 수요자가 있는 국가로 직접 동물을 밀수하기보다는 여러 나라를 경유하면서 감시를 피하고 있다. 또 중국계 밀수업자들이 직접 남아공으로 건너가 코뿔소 뿔로 목걸이 등 액세서리를 만들어 아시아 지하 시장에 유통하는 등 현지에서 직접 밀수품을 조달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보고서는 뿔이나 상아를 작은 조각으로 분해해 기계 부품, 땅콩 봉지에 숨겨서 들여오거나 엑스레이 검사를 통과하기 위해 치약, 샴푸 속에 넣어 반입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2017년 6월12일 남아공 경찰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요하네스버그의 한 공장에서 가루 형태의 세공된 코뿔소 뿔을 발견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경찰이 지난 16일 공개한 희귀종 뉴기니아 앵무의 밀수 모습. 이 앵무새는 파이프 속에 넣어져 반입되다 적발됐다.
AFP통신
◆야생동물 밀수 범죄는 인간에게도 해악

야생동물 밀수는 희귀동물의 멸종을 재촉하는 것은 물론 다른 범죄를 유발하거나 공중보건을 저해한다. EFFACE는 각종 범죄조직들이 야생동물 밀수에 뛰어드는데, 여기서 나온 수익이 무기 구매나 테러 자금 등에 전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러시아의 테러 조직은 한 마리당 10만달러(약 1억원)에 독수리를 팔아 조직원 훈련비용으로 사용했고, 수단의 반군들은 무기를 사기 위해 코끼리를 죽여 상아 매매에 나서고 있다. 또 동물에 마약을 숨기는 등 전체 밀수 범죄의 40%가 다른 범죄에 연관돼 있는 상황이라고 브라질 당국은 지적했다. 아울러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는 야생동물을 섭취하는 경우 각종 질병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EFFACE는 밝혔다. 특히 코뿔소 뿔이 열을 내려주고, 암을 치료해준다는 속설 탓에 최근 중국, 베트남에서 소비가 늘고 있지만 의학적 근거는 없다.

밀수업자가 국내로 몰래 들여오려다 적발된 비단원숭이
자료사진
야생동물 밀수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의해 불법으로 간주돼 3만5000여종이 거래 감시 대상으로 지정된 상태다. 하지만 적발될 확률이 낮고 처벌이 엄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근절되지 않고 있다. CITES에 가입돼 있는 국가들은 야생동물 밀수가 적발되면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규정에 따라 해당 항공사 자격 요건을 폐기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이런 규정이 유럽연합에서 적용된 적은 없었다.

전문가들은 야생동물의 전면적인 금지와 같은 극단적인 방법보다는 국가 간 사법 협조체계 구축, 엄한 처벌 적용 등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밀수 전면 금지는 야생동물의 시장 가치를 높여 밀수업자들이 오히려 범죄에 나서도록 하고, 국내 밀수를 증가시키는 풍선효과를 부르기 때문이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의 유리 페도토프는 “적합하지 않은 법과 제재, 수사 기관의 인력 부족, 국가 간 협조 부재가 야생동물 밀수 적발을 어렵게 한다”며 “특히 범죄 조직이 연관된 야생동물 밀수에 대해 더 강력한 처벌이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TRAFFIC은 “동물을 압수하는 데서 수사가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밀수조직의 검거가 수사의 목표가 돼야 한다”며 “밀수 경로 및 방법이 실시간으로 국가 간 공유돼야 하고, ‘야생동물밀수 퇴치를 위한 국가 통합 체계’(NISCWT)와 같은 협약이 아프리카 국가들 사이에서 하루빨리 비준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