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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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끝없는 삶의 암벽… 당신, 올해도 잘 넘겼어요

‘충북의 설악’영동 천태산
천태산 하산길에 본 75m 암벽구간을 오르는 등산객들.
그저 산길만 타고 가는 등산을 생각했다가 예상치 못한 큰 암벽을 만나면 당황하게 된다. 돌아갈 수 있는 등산로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런 길이 없다면 암벽을 타야 산을 오를 수 있다. 그동안 익숙했던 걸음걸이와 보폭 등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암벽을 탈 수 있는 로프를 잡고 힘겹게 한 발을 내딛는다. 양손에 힘을 줘 굵은 로프를 잡은 뒤 몸을 끌어당긴 후 한 발을 내 가슴 높이까지 올린다. 그래야 다음 발을 내딛기가 수월해진다. 군대를 다녀온 남성이라면 유격훈련을 떠올리면 될 듯하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옮기다 보면 로프의 끝에 이른다. 아래서 볼 땐 언제 오를까 싶던 암벽을 어느새 오른 것이다. 이런 과정을 겪고 암벽에 올라서서 뒤돌아보면 장애물 없는 풍광이 펼쳐진다. 암벽이기에 시야를 가리는 나무가 딱히 없기 때문이다. 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지만, 얼마 못 가 다시 한숨을 내쉬게 된다. 더 거대한 암벽이 모습을 드러낸다.

충북 영동의 천태산은 ‘충북의 설악’으로 불린다. 설악산 하면 멋진 풍광 등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설악산은 오르기 험한 악산이다. 설악산처럼 오르기 힘든 산에는 ‘악’자가 들어가 있다. 멋진 풍광 외에도 오르기 쉽지 않은 산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천태산은 이름에 ‘악’자는 없다. 하지만 ‘충북의 설악’이란 별칭처럼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 아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여정이 반갑겠지만, 등산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겐 암벽이 나타날 때마다 올라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들게 한다. 마치 선택의 갈림길에 서는 삶의 순간순간처럼 말이다.

천태산을 오르려면 천태산 주차장에 주차를 한 뒤 영국사까지 15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영국사에 이르면 천태산 등산로가 나오는데 일반적으로 암벽이 있는 A코스로 올라 D코스로 내려온다. 영국사에서 암벽구간을 거쳐 정상을 찍은 후 남고개를 통해 영국사로 다시 내려오는 4시간 정도의 코스다.
천태산 등반의 하이라이트 75m 암벽 앞 경고문.
천태산 75m 암벽구간 경사도는 수치상 70도이지만, 올라서는 순간 거의 직벽처럼 느껴진다. 초보자의 경우 힘에 부칠 것 같으면 꼭 우회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충북 영동 천태산 등반에선 다양한 암벽구간을 만난다.

영국사 오른편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가면 A코스 표지판이 보인다. 등산로에 접어든 뒤 5분이면 로프를 만난다. 그나마 10m 정도 길이로 초보자도 오를 수 있는 구간이다. 그래도 가기 힘들다면 우회로가 있다. 간신히 로프를 잡고 이 구간을 지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간신히 이곳을 지났다 싶으니 다시 로프를 잡고 올라야 하는 암벽구간이 나온다. 본격적인 암벽산행이 시작된 것이다. 우회로가 있다 하더라도 원 구간에 비해 거리가 좀 더 짧은 암벽구간을 만나게 돼, 우회로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게 두세 번 20m 정도 되는 암벽구간을 오르면 천태산 등반의 하이라이트 75m 암벽을 만나게 된다. 암벽 앞엔 친절하게도 ‘경고문’이 있다. ‘이 구간은 추락사고가 빈번해 일반등산객의 출입을 금지한다. 우회등산로를 이용하라’는 내용이다. 절대 무리해서 욕심을 낼 필요는 없다. 75m 암벽구간에서 오른쪽으로 우회등산로가 나있으니, 그 길로 가도 된다. 목표에 이르기 위해 꼭 빠른 길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속도가 좀 느리더라도 정상으로 가는 방향만 맞으면 언젠가 이르기 때문이다.
천태산 정상.
천태산 암벽구간을 오르면 저 멀리 산봉우리들이 파도를 치는 모습이 펼쳐진다. 힘들게 오른 고생에 대한 보답으로 생각하면 될 듯싶다.
천태산 정상에 올라선 뒤 하산길은 오르는 길보다 수월하지만 로프를 잡고 조심히 내려와야 하는 구간들이 있다. 하산길에선 절벽처럼 툭 튀어나온 구간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전망 쉼터를 지난 뒤 남고개를 거치면 영국사까지 편안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75m 암벽구간 경사도는 수치상 70도이지만, 올라서는 순간 거의 직벽처럼 느껴진다. 초보자의 경우 힘에 부칠 것 같으면 꼭 우회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우회로로 가도 75m 구간만큼은 아니지만 암벽은 만난다. 우회로로도 계속 가기 힘들다면 여기서 산에서 내려가는 것이 좋다. 이 이후부턴 내려가고 싶어도 길이 없어 정상까지 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짧든 길든 암벽을 오른 뒤엔 저 멀리 산봉우리들이 파도를 치는 모습이 펼쳐진다. 고생에 대한 보답으로 생각하면 될 듯싶다. 75m 암벽을 지난 후에도 짧은 암벽구간을 두세 번 더 지나면 천태봉 정상을 만난다. 정상에 오르면 서대산, 상주산, 덕유산, 계룡산, 속리산 등이 보이는데, 나무에 가려 암벽에 올랐을 때보다 시야는 좋지 않다. 정상에 올라선 뒤엔 D코스로 향한다. A코스에 비해 수월하지만 로프를 잡고 조심히 내려와야 하는 구간들이 있다. 영국사로 내려가는 길에는 절벽처럼 툭 튀어나온 구간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전망 쉼터를 지난 뒤 남고개를 거치면 영국사까지 편안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다른 산보다 힘이 더 들지만, 일행끼리 서로 도와주며 등반을 하면 꽤 큰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코스다.
영국사는 고려시대 홍건적이 쳐들어왔을 때 피신한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이 사찰에서 기도를 드린 뒤 홍건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영동 영국사엔 수령 1300년으로 알려진 은행나무가 있다. 대여섯명이 감싸야 안을 수 있는 굵기와 사방으로 뻗은 가지 등이 위용을 자랑한다. 가을이 지나 은행잎은 떨어졌지만, 나무 아래 깔아 놓은 노란 카펫이 운치를 더한다.
영동 영국사의 작은 불상.
내려오는 길에 영국사를 들르는 것도 잊지 말자. 고려시대 홍건적이 쳐들어왔을 때 피신한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이 사찰에서 기도를 드린 뒤 홍건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이에 평국안민(平國安民)하게 됐다며 절 이름을 국청사에서 ‘영국사(寧國寺)’로 바꾸게 됐다고 한다. 사연 외에도 사찰이 유명한 것은 천연기념물 233호로 지정된 수령 1300년의 은행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대여섯명이 감싸야 안을 수 있는 굵기와 사방으로 뻗은 가지 등이 위용을 자랑한다. 가을이 지나 은행잎은 떨어졌지만, 나무 아래 깔아 놓은 노란 카펫이 운치를 더한다.

영동=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