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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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기후재앙 막아야"…'기후조작' 금기 깨어질까?

12일 파리기후협정 체결 2주년 / 지구촌 탄소배출량 다시 증가세… ‘지구공학’ 연구 힘 실리나
“필드에서 우리 선수들이 하나둘 쓰러지더니 구토 증상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스리랑카 크리켓팀 코치인 닉 포타스는 지난 3일(현지시간) 인도의 수도 델리 페로츠 샤 코틀라 그라운드에서 열린 인도와의 국가대항전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은 주최 측에서 제공한 방진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였다. 대기실에는 위급상황에 대비한 산소통도 준비됐다. 그러나 경기 도중 이상증상을 호소하는 선수들이 늘어났고 결국 대회는 중단됐다. 이는 심각한 스모그로 국제 스포츠 경기가 중단된 첫 사례로 기록됐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이날 델리의 공기 중 미세먼지(PM2.5) 농도는 국제보건기구(WHO) 기준치(25㎍)의 15배 이상. 숨만 쉬어도 신체가 하루에 담배 한 갑 정도를 피운 것과 비슷한 영향을 받는 수준이다.

기후변화가 인류에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는 경고음은 약 반세기 전부터 시작됐다. 1972년 6월 스웨덴에서 개최된 유엔인간환경회의(UNCHE)는 ‘하나뿐인 지구’를 살리기 위한 국제적 법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979년 전 세계 과학자들은 스위스 제네바에 모여 “국제사회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지구는 파멸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 각국은 1988년 ‘유엔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를 발족, 공동 행동에 나섰다. 4년 뒤인 1992년 국제사회는 최초의 기후변화협약을 채택했다. 이후 교토의정서를 거쳐 파리기후변화협정까지 국제사회는 지난 15년간 기후변화의 양상과 전망을 두고 갑론을박해 왔다.

◆오늘 파리협정 2주년…‘경제성장=탄소배출량 증가’ 공식 깨다

파리협정은 12일 체결 2주년을 맞는다. 파리협정은 2015년 12월12일 체택된 후 2016년 11월4일 기후협정으로서는 최초로 국제법으로 승격됐다.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파리협정의 국제법 발효가 확정되자 “지구에 있어서 전환점이 되는 날로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파리협정의 등장으로 전 세계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체제변화를 시작했다. 법적 구속력을 갖는 만큼 실질적 효과가 나타났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파리협정 체결 전후인 2014∼2016년 세계 탄소배출량은 3년 연속 비슷한 수준으로 억제됐다. 2015년에는 전년 대비 소폭 하락하기도 했다. 이 시기 평균 경제성장률은 3.1%에 달해 기존 ‘경제성장=탄소배출량 증가’의 공식이 깨졌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IEA는 재생가능에너지 생산이 늘고 천연가스 등 전반적으로 에너지의 효율성이 크게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중국이 이 시기 기후변화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경쟁하면서 긍정적인 양상이 더해졌다. 두 강대국은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2015년 셰일가스 등으로 에너지 전환을 꾀하며 약 1억6000만t 정도의 탄소배출을 줄이는 등 ‘대전환’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협정 탈퇴를 선언하면서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하고 있다.
워싱턴=UPI연합뉴스
◆탄소배출량 다시 증가세…올해 사상 최대로 관측

파리협정 이후 지난달 독일 본 당사국총회(COP23)까지 후속 협상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COP23 고위급회의에서 남태평양 섬나라 피지에서 온 12세 소년 티모치 나울루살라는 “집과 학교, 식량자원, 돈, 식수까지 모든 것이 파괴됐다. 아름다웠던 우리 마을은 폐허가 됐다”며 “기후변화는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외쳤다. 티모치는 지난해 피지를 덮친 사이클론 ‘윈스턴’의 피해가 가장 컸던 나이비쿨라에서 왔다. 지켜보던 각국 정상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마치 코스프레 축제를 즐기듯 기후변화 대응책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이 미국을 대신할 것을 제안한다”며 참석한 197개국 대표단 앞에서 ‘기후변화 리더십’을 강조했다. 
남태평양 섬나라 피지에서 온 12세 소년 티모치 나울루살라.
독일 본 당사국총회(COP23).

자축하며 끝난 기후변화 당사국총회였지만 이 자리에 모인 기후변화 관련 전문가들은 국제사회 지도자들의 ‘잔칫집’ 분위기에 우려를 나타냈다. 전 세계 탄소배출량이 다시 슬금슬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COP23에 모인 과학자들은 올해 전 세계 탄소배출량은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관측했다. 2017년 예상치는 36.80Gt(1Gt=10억t)으로 지난해 36.18Gt에 비해 약 2% 가까이 증가했다. 이는 최근 5년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수치다. 기후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던 1990∼1999년 해마다 평균 1.1%씩 늘었고 기후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됐던 2000∼2009년에는 해마다 평균 3.3% 증가했던 것과 비교하면 그 심각성을 가늠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대로라면 2018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수준의 증가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티모치의 말처럼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전지구적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등이 켜졌다. 파리협정의 목표인 지구온도를 산업화 이전보다 2도 높은 수준에 묶어두겠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빗발쳤다. 미국의 탈퇴선언은 데이터로만 보면 기후변화에 치명적이었다. 이런 가운데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협정’이 아니라 과학적인 ‘조작’이라는 주장이 더욱 힘을 받고 있다고 가디언 등은 전했다. 지구공학(지오엔지니어링) 과학자로 불리는 이들은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를 직접 흡수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기후조작’ 안 하면 ‘기후재앙’ 닥칠지도

기후조작을 주장하는 지구공학은 학계에서도 금기로 치부돼 왔다. 인간이 지구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예측하기 어려운 위험 가능성을 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로 기후변화 목표 달성에 위기감이 커지고 덩달아 과학기술을 통해 직접 기후변화에 개입하자는 주장이 탄력을 받았다.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배출량 흡수’ 없이는 파리협정의 목표 달성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분석이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독일의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를 비롯한 세계 12개 기후변화 전문기관과 대학의 연구자들이 참여한 국제연구팀은 지난해 6월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은 연구논문에서 세계 모든 나라가 파리기후회의에서 약속한 감축계획을 모두 이행하더라도 세기말까지 지구 온도는 산업혁명 이전 대비 2.6~3.1도 상승하게 된다는 분석 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가 사용한 116개 전망 모델 가운데 101개가 2도 목표 달성 위해서는 배출량 흡수가 이뤄질 것임을 가정한 것이라고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정책기구 기후분석의 기후과학자 빌 해어 연구원은 “(이산화탄소) 배출흡수 기술만이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자신할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파리협정 등 세계가 노력하고 있지만 이미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은 1도를 넘어섰다”면서 “사람들이 얘기하기를 꺼리지만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섭씨 1.5도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지오엔지니어링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상승 폭 섭씨 1.5도는 파리협정의 목표다.

인공적 ‘기후조작’ 방법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탄소 흡수를 위해 특별히 고안된 숲을 조성하는 것이다. 기후공학자들은 또 대기에서 이산화탄소를 직접 빨아들여 지하에 저장하거나 중화시키는 기계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층권에 미세입자를 뿌려 햇빛을 가리거나 식물플랑크톤을 증식하는 등 다양하고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들도 나온다. 환경단체 등 지구공학을 언급하는 것조차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온실가스를 흡수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