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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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114분… 동해를 품는 시간

22일 경강선 개통… 더 가까워진 강릉
“정동진 가서 해 뜨는 것 보고 싶어.”

“청량리에서 밤기차 타면 일출 맞춰서 도착할텐데 갈까?”

밤기차를 떠올리면 낭만, 설렘 등이 연상된다. 이 분위기를 느끼려 한 번쯤은 밤기차 여행을 꿈꾸고, 실행에 옮긴다. 그 여행의 대표 목적지가 동해다. 오붓하게 연인끼리, 단란하게 가족끼리 삶은 계란을 은박지에 쌓인 소금에 찍어 먹고, 스르르 잠이 든 뒤, 눈을 뜨면 바다 풍광이 펼쳐진다. 기차에서 내린 뒤 매서운 겨울 바다 바람을 버티기 위해 손을 꼭 부여잡고 바다 끝 수평선에서 슬며시 고개를 내미는 일출을 보며 뭔지 모를 감동에 젖어든다. 감동이 잦아들며 몰아치는 공복감에 주위에서 식사와 차를 마시면 어느새 슬슬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이틀과 같은 당일치기 밤기차 여행은 마무리된다. 이처럼 낭만으로 가득 찬 밤기차 여행은 동해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가능했다.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6시간을 달려야 볼 수 있었던 동해 일출을 KTX 개통으로 2시간이면 가능하게 됐다. 겨울철에는 서울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면 강릉에서 일출을 보고, 해변을 거닐다 점심을 먹은 뒤 돌아와도 된다. 느긋하게 강릉의 바다를 당일치기로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서울에서 강릉까지 가는 밤기차 노선은 강원도로 바로 가지 않는다.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를 타면 백두대간을 가로지르지 못하다 보니 충북 쪽으로 내려간 뒤 다시 강원 태백 쪽으로 올라가야해 6시간이나 걸렸다. 밤이면 잠을 자며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낮에 6시간을 가면 기차 밖 풍광이 좋은 것도 잠시다. 지루할 수밖에 없고, 아침에 이동하면 늦은 오후에 도착하니 하루 일정 대부분이 날아간다. 승용차로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서울에서 강원 강릉까지 3시간 정도 걸리지만, 주말이나 휴가철이면 서울시내 출퇴근길을 옮겨놓은 듯한 차량 행렬로 시간을 종잡을 수 없다. 결국 동해는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던 곳이었다. 그렇게 멀게 느껴지던 동해가 곁으로 왔다. 해가 늦게 뜨는 이맘때 서울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면 강릉 바다에서 일출을 보고, 도루묵탕으로 속을 풀고, 바다를 거닐다 점심에 회 한 접시 먹은 뒤 돌아와도 저녁 약속에 여유있게 갈 수 있게 됐다. 주말 아침 늦잠을 잔 뒤에도 “오늘 바다 보며 회 먹으러 동해나 갔다올까?”가 현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시속 250㎞로 달리는 KTX는 서울역에서 강릉역까지 1시간 54분, 114분이면 도착한다.
서울에서 강릉을 잇는 경강선 고속열차 KTX가 개통하는 오는 22일부터 말이다. 시속 250㎞로 달리는 KTX는 서울역에서 강릉역까지 1시간 54분, 114분이면 도착한다. 영화 한 편을 보는 시간보다도 짧다. 6시간이 걸리던 무궁화호의 3분의 1로 시간을 단축한 것이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KTX는 무궁화호와는 노선이 다르다. 서울∼청량리∼상봉∼양평∼만종∼횡성∼둔내∼평창∼진부∼강릉역을 거친다. 수도권을 벗어나면 원주, 횡성, 평창을 거쳐 강릉으로 곧바로 간다. 이중 새로 신설되는 역은 만종부터 강릉까지 6개로 KTX가 제 속도를 내는 것은 만종을 지나서부터다. 그 전까지는 다른 열차와 철로를 공유해 제 속도를 내지 못한다. KTX는 만종에 들어서면서부터 넓게만 느껴진 강원도를 좁게 만들어버렸다. 다만 속도를 선택하느라 멋진 풍광은 포기를 했다. 강원도의 높은 산봉우리들이 너울치는 풍광을 보며 가리라 기대하지만, 대부분 터널을 통과한다. 경강선 강원도 구간은 65%가 터널이다. 간혹 터널을 벗어나서 보이는 풍광이 귀하게 느껴진다. 경강선이 강릉까지 도착하는 동안 거치는 터널은 총 34개로 그중 대관령 터널이 21.7㎞로 가장 길다. 하지만 시속 250㎞의 KTX에선 그리 길게 느껴지진 않는다.

시험 운행하는 KTX를 타보니, 체감도는 더 컸다. 차로 가면 휴게소에서 점심을 해결하던 것과 달리 오전 9시 출발해도 11시면 강릉에 도착해 점심때까지 시간이 남을 정도였다. 느긋하게 강릉의 바다를 당일치기로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쉽게도 KTX를 타고 강원도로 가는 동안에는 바다를 만나지 못한다. 이 아쉬움을 달래려면 정동진으로 향하면 된다. 강릉역과 정동진을 연결하는 셔틀버스가 있다.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기차역, 일출 등으로만 정동진을 생각하면 아쉽다. 무궁화호를 타고 가면서 만나는 바다 풍광을 영화관 스크린처럼 볼 수 있는 열차를 탈 수 있는 곳이 정동진이다. 이름부터 바다열차다. 동해안 해안선을 달리는 열차로 강릉∼동해∼삼척을 잇는다.
바다열차는 정동진∼묵호∼동해∼추암∼삼척해변∼삼척역을 왕복으로 다닌다. 총 58㎞ 구간을 운행하는데, 정동진에서 출발하면 삼척역까지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일반 기차와 다르게 바다 쪽 창문을 향해 좌석이 놓여 있는 구조다. 영화관 스크린처럼 큼지막한 창문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동해를 품을 수 있는 열차다.

바다열차는 정동진∼묵호∼동해∼추암∼삼척해변∼삼척역을 왕복으로 다닌다. 총 58㎞ 구간을 운행하는데, 정동진에서 출발하면 삼척역까지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창밖 풍광은 달리 말이 필요 없을 정도다. 남녀노소 사진을 찍는 소리와 감탄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들이대면 ‘인생 샷’이다. 풍경뿐 아니다. 열차 내 즐길 거리도 다양하다. 와인, 초콜릿, 포토서비스가 함께하는 프러포즈 실은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사연을 접수받아 기념품과 함께 우편물로 발송해주는 서비스는 아날로그 감성을 되살려준다.
동해안 해안선을 달리는 바다열차는 강릉∼동해∼삼척을 잇는다. 일반 기차와 다르게 바다 쪽 창문을 향해 좌석이 놓여 있는 구조다. 영화관 스크린처럼 큼지막한 창문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동해를 품을 수 있다.
바다열차는 기차역 어디서든 승하차가 가능하다. 마음에 드는 역에 내린 뒤 종점까지 갔다 돌아오는 열차에 다시 타면 된다. 다만 하루에 두 번 왕복을 하니 시간표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기차보다 더 직접 바다를 느끼고 싶다면 정동진에서 심곡항을 연결하는 해안단구 탐방로 바다부채길이 있다. 썬크루즈 주차장과 심곡항 사이를 잇는 2.86㎞의 탐방로다. 지형이 바다를 향해 부채를 펼친 모양과 닮아 정동심곡바다부채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바다를 옆에 두고 탐방로를 걷는 데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트레킹이라기보다는 여유있는 바닷길 산책에 가깝다. 하지만 바람이 세 파도가 강할 땐 입장을 통제한다. 그만큼 바다와 가까운 길이다.
강릉 정동진에서 심곡항을 연결하는 해안단구 탐방로 바다부채길의 묘미는 구불구불 꺾이거나, 경사가 있는 부분을 지나면 기대하기 어려운 새로운 풍경이 나온다는 것이다. 앞을 보면서 가지만 뒤를 돌아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앞에서 보는 해안단구의 모습과 뒷모습은 저런 풍경을 봤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바다부채길은 왕복으로 갔다와도 되지만, 보통은 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계단을 오르는 것이 자신이 있다면 심곡항에서 썬크루즈 주차장 방향을 추천한다. 다만, ‘억’ 소리 나게 많은 계단을 올라야해 멋진 풍광 대신 힘들게 계단을 올랐던 기억만 남을 수 있다. 썬크루즈 주차장에서 계단을 내려와 평탄하게 걷는 코스가 좀 더 수월하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고 보존된 바닷길은 2300만년전 지각변동을 일으킨 해안단구의 비경을 관찰할 수 있는 국내 유일한 길이다. 해안단구란 해수면에 맞닿아 평탄하게 형성된 지형이 세월이 흘러 계단처럼 분포된 것을 말한다.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받았다.
바다부채길의 묘미는 구불구불 꺾이거나, 경사가 있는 부분을 지나면 새로운 풍경이 나온다는 것이다. 앞을 보면서 가지만 뒤를 돌아보는 것도 잊지 말아야한다. 앞에서 보는 해안단구의 모습과 뒷모습은 저런 풍경을 봤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나무 계단을 내려오면 파도가 칠 때 자갈 구르는 소리가 들리는 몽돌해변을 만난다. 바다 위에 놓인 나무 데크와 철골 구조물로 이어진 해안길의 시작이다.

다양한 기암들을 보지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기암은 투구바위다. 고려시대 강릉에 부임한 강감찬 장군이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를 물리쳤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다. 멀리서 보면 장군이 쓰는 투구가 바다를 향해 놓여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바닷길을 좀 더 걸으면 부채바위에 닿는다. 바다를 향해 부채 모양으로 펼쳐진 바위다. 동해에 떠내려오는 여자 서낭신 그림을 건져 마을에 서낭당을 짓고 모셨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부채바위엔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대표적인 곳 외에도 각자 마음에 드는 풍광을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부채길은 다양한 모습을 품고 있다.
강릉의 대표적인 일출 장소인 주문진의 소돌아들바위공원에서는 바람과 파도에 깎인 절묘하고 기괴한 모습의 기암 괴석들을 볼 수 있다.
동해까지 와서 일출을 빼놓을 수 없다. 겨울엔 해가 늦게 뜨기에 여름보다 일출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강릉의 대표적인 일출 장소는 주문진의 소돌아들바위공원이다. 바람과 파도에 깎인 절묘하고 기괴한 모습의 기암 괴석들을 볼 수 있다. 도로 쪽에서 보면 거무튀튀하고 날카롭게 각진 뿔이 달린 수소를 연상케하는 바위가 눈에 띤다. 소돌이다. 소돌 뒤편으로는 코끼리 모양의 바위도 있다. 이곳의 바위들은 지각변동으로 솟은 바위로 노부부가 기도 후 아들을 얻었다고 해, 공원 이름에 아들이 들어가 있다.
강릉 소돌아들바위공원 코끼리 바위 부근으로 해 뜨는 모습이 장관이다. 코끼리 바위와 그 옆에 붙어 있는 바위 사이 공간이 마치 남한 지도처럼 보이는데, 그 사이로 해가 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강릉 안목해변 커피거리엔 즐비하게 카페들이 이어져 있다. 내부에서 직접 커피를 볶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카페, 연탄 모양의 빵을 파는 카페 등 각자 개성을 살린 곳이 많다.
일출 때는 코끼리 바위 부근으로 해 뜨는 모습이 장관이다. 코끼리 바위와 그 옆에 붙어 있는 바위 사이 공간이 마치 남한 지도처럼 보이는데, 그 사이로 해가 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피곤하게 돌아다니기보다 편히 앉아 바다 풍광을 즐기려면 안목해변 커피거리로 향하면 된다. 즐비하게 카페들이 이어져 있다. 내부에서 직접 커피를 볶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카페, 연탄 모양 빵을 파는 카페 등 각자 개성을 살린 곳이 많다. 어느 카페를 갈지 결정하기 힘들지만, 자신의 느낌을 믿고 들어가면 된다. 카페들이 바다를 보고 영업을 하기 때문에 바깥 풍경은 비슷하다.

강릉=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