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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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아파트 주차장에는 유독 신경 쓰이는 차가 한 대 있다. 언제나 주차장 중앙에 이중주차돼 있는 차다. 한낮에 주차공간이 많을 때도 다른 차량들의 동선을 가로막고 있어서 여간 불편하지가 않다. 기자의 경우 주차가 서툰지라 매번 내려 낑낑대며 차를 밀어낼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불평이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온다. “도대체 이 차 주인은 뭐 하는 사람이길래 차를 이렇게 세워놓는 거야!”라고.

며칠 전에는 이른 아침부터 집 벽을 타고 기계 돌아가는 굉음이 울려퍼졌다. 문을 열고 복도에 나가보니 옆집이 한창 인테리어 공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옆집인데도 공사 안내를 받은 적이 없다. 원래 아파트 게시판에 공지해야 하지만 업체 측이 이를 지키지 않는 탓이다. 아침의 정적을 깨뜨리는 시끄러운 기계음에 또 불평이 튀어나왔다. “도대체 집주인은 뭐 하는 사람이야! 이렇게 시끄러운데.”

서필웅 체육부 기자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이렇게 타박하는 이웃들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옆집 사람, 또는 같은 주차장을 매일 이용하는 사람인데도 제대로 된 인사 한번 나누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불평의 첫마디가 똑같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라고.

아마도 이런 불평은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이 일상화된 현대사회에서 완벽한 사생활 보호는 불가능하다. 나의 행동 하나, 나의 흔적 하나가 함께 사는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는 많은 경우 갈등으로 이어진다. 심지어는 이웃 간에 법적 다툼이나 물리적 다툼으로 이어질 때도 있다. 이웃 간에 험악한 얼굴로 첫 대면을 하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 서울에 처음 이사 왔을 때 살던 동네 골목은 이렇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이 한 골목을 공유하고 살아가니 어찌 갈등이 없을 수 있을까. 옆집 아주머니가 널어놓은 건고추 냄새로 매캐한 기운이 하루 종일 진동했을 때도 있었고, 골목길 끝 집 아들이 새로 사 주차한 자동차가 통행을 불편하게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다들 ‘이해’라는 것을 했었던 듯하다. 옆집은 제대로 된 옥상이 없으니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를 이해했다. 골목길 끝 집 아들이 골목 안에 세워놓은 자동차도 얼마든지 이해했다. 살다 보면 다들 사정들이 있으니까. 그때는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고, 그 사람의 사정도 잘 알고 있었기에 ‘이해’도 함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파트라는 벽 속에 갇혀 사는 지금은 도저히 그 ‘이해’라는 것을 해줄 수가 없다. 얼굴조차도 모르는 사람의 사정을 어찌 봐줄 수 있겠는가. 그러다보니 이제 불평을 하고 상대방을 타박하는 기준은 딱 한 가지다. ‘나를 얼마나 불편하게 하는가’.

아파트 속 삶이 당연해진 시대에 굳이 과거를 미화할 생각은 없다. 좁은 땅덩어리에 모두가 편리하게 살길 원하는 지금 아파트 같은 정돈된 주거환경도 충분히 괜찮다. 다만, 이렇게 얼굴도 모른 채 서로를 타박하는 삶은 슬프다. 공동주택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꼭 지켜야 할 에티켓을 만들어가는 것과 함께 적어도 얼굴 정도는 익히고 살 수 있는 지역사회의 복원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주민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이해’도 다시 싹틀 수 있을 것이고 갈등도 한층 줄어들지 모른다.

서필웅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