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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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튤립은 꽃이라도 있지”

#1. “튤립? 튜울립?”

암호화폐(가상화폐) 비트코인이 처음으로 2000만원을 돌파한 날, 친구들의 조소가 쏟아졌다. 올 초였나, “비트코인이란 게 뜬다더라”고 말한 친구에게 일침을 날린 A에게로였다. 당시 A는 “야, 튤립은 꽃이라도 있지”라고 젠체하며 말했다. 말인즉슨, 이 실체도 없는 무슨 코인에 투자하는 것은 17세기 네덜란드를 강타했던 튤립 파동과 비슷하단다. A는 당시 네덜란드에서 튤립 거품이 꺼지고 나자 투자자들은 본전의 10%도 채 건지지 못했다는, 그나마 그 사람들은 튤립이라도 남지 않았느냐는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늘어놓았다. 아마 그 역시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이겠지만 우리들 상당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투자를 포기했었다. 사실 주로 거래가 이루어진 것은 튤립 꽃이 아니라 구근(알뿌리)이며, 선물거래로 실제 구근마저 구경도 못한 사람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이 지난 다음이었다.

이우중 정치부 기자
그때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 중 일부는 최근 뒤늦게나마 푼돈으로 암호화폐 ‘투기’에 뛰어들었다. 암호화폐 투자를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그들은, 사실 우리는 아무런 정보 없이 그야말로 ‘돈 놓고 돈 먹기’식으로 다양한 암호화폐를 사들였다 팔기를 반복하게 됐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투전판에 뛰어든 이들 중 일부는 돈을 따고 일부는 잃었다. 이 글을 쓰는 시점까지는 그렇다.

#2. “가즈아!”

예전에 스포츠토토 커뮤니티에서 본 듯한데, 어느새 유행어가 돼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건배사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가자’를 힘주어 변형한 말로 인터넷 게시판에서 “○○코인 XXX원 가즈아!” 같은 식으로 쓰인다. 코인 가격이 급락할 땐 “한강 가즈아∼”처럼 무시무시한 말로 변용되기도 하나, 읽는 이나 쓰는 이나 그저 위트 있는 표현 정도로 인식하는 모양이다.

문득 겹치는 모습이 있다. 한국전쟁 후 우울한 사회상을 그린 이범선의 소설 ‘오발탄’에서 주인공 철호의 어머니는 치매에 걸려 “가자!”라는 말만 반복한다.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가자는 끊임없는 외침은 소설의 분위기를 더욱 암울하게 만드는 한편 철호에게는 절박한 현실을 더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전후 한국을 살아내는 소시민의 절망에 ‘단군 이래 가장 풍요로운 세대’라는 현재를 대입시키는 것은 물론 가당치 않은 줄 안다. 그러나 양쪽 모두 ‘가자’의 기저에는 ‘좌절’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암호화폐 열풍은 직장인을 넘어 대학가와 노량진 고시촌 등으로도 번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자고 일어나면 배로 뛰었다는 소식이 연일 전해지는 암호화폐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기 힘든 현실에서 찾은 유일한 돌파구가 아닐까. 투자는 본인의 책임이며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만, 그들에게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역전의 발판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결국 소설 끝자락에서 철호는 택시를 타고 아무데로나 “가자”고 말하다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의식을 잃는다. “가즈아!” 역시 오발탄처럼 목적지를 잃고 가상공간에 휑하니 떠다니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우중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