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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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구속, 수사 종착역 아니다

검찰이 최근 3번의 구속영장 청구 끝에 기어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구속했다. 우 전 수석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들은 검사 시절 ‘독종’으로 불린 그를 떠올리며 혀를 찼다. 우 전 수석이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로 일하던 2008년 비리 혐의가 불거진 한국교직원공제회 전 이사장 김모씨를 상대로 영장을 3번 청구해 겨우 구속한 일화가 대표적이다.

한 검찰 간부는 “당시 피의자인 김 이사장과 우연히 검찰청사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쳤는데 옆의 변호인한테 ‘결국 이렇게 될 거면 그냥 처음부터 구속되게 놔두지 그랬느냐’고 하소연하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전했다.

한 번 영장이 기각되니 눈에 불을 켜고 더 샅샅이 뒤져 추가 혐의를 파헤치는 통에 되레 불리해지고 말았다는 원망이 섞여 있었다. 그 간부는 “우 전 수석 본인이 그간 쌓은 업을 고스란히 돌려받은 것 아니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 전 수석 구속 직후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변호사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1년 새 영장을 3번 청구하는 건 이례적으로 느껴지지 않나. 외국인들 입장에서 한국에서 정권에 찍힌다는 게, 반대파의 미움을 받는다는 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까.”

최근 검찰은 적폐청산 수사와 관련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될 때마다 거세게 반발하며 법원과 대립각을 세웠다.

지난 9월 내놓은 ‘구속영장 기각에 대한 서울중앙지검 입장’을 보면 “이런 상황에서 국정농단이나 적폐청산 처벌이라는 검찰 사명을 수행하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압박성 표현까지 등장했다. 그 뒤로도 검찰의 항의성 입장 발표와 영장 재청구가 계속 되풀이되니 이제는 이례적이란 느낌조차 들지 않는다.

장혜진 사회부 기자
최근 3개월간 검찰이 입장을 낸 것만 9번이다.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정말 수사에 차질이 생기는 걸까. 피의자를 구속만 하면 일단 성공한 수사가 되는 것인가.

한 법조인은 “검찰이 피의자 구속 후 바뀔지도 모르는 진술에 대한 환상을 여전히 갖고 있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혹시라도 “이실직고하여라… 나는 구속 권한이 있으니”라고 엄포를 놓으며 수사한다면 나중에 회유·압박에 의한 임의성 없는 자백으로 배척될 수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의 영장 기각이 아무리 불만스러워도 검찰은 법치국가의 틀 안에서 ‘게임의 룰’을 지켜야 한다.

우리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불구속 상태에서 이뤄지는 임의수사를 대원칙으로 삼는다. 구속이란 강제수사는 어디까지나 ‘예외적’이어야 한다. 형소법은 주거 부정과 도주 및 증거인멸 염려를 구속 사유로 명시하고 범죄의 중대성 등을 보충적 사유로 덧붙였다. 이 역시 헌법상 신체의 자유 보장과 맥을 같이한다.

수사 단계에선 피의자의 방어권과 자유권적 기본권을 충실히 보장하되 대신 재판을 거쳐 혐의가 인정되면 법정구속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법원 또한 국민이나 수사기관이 좀더 납득할 수 있는 영장 발부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구속은 결코 성공된 수사의 필수 요건이 아니다. 수사 도중의 한 정류장일 뿐 수사 종착역이 아니다.

장혜진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