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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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올드보이 운동장’된 美 상원… 워싱턴 정치 초고령화 시대로

70대 이상이 25%… 역대 최고비율 / 100명 중 8명이 80대… 40대 14명 / 오린 해치·매케인·코크란 등 활동 왕성 / 주요 법안 표결 과정서 노익장 과시 / 평균 63세 육박 재임기간 10년 넘어 / 선거출마 계속 90세도 활동 의지 / 건강탓 감세안 처리 일정 3차례 연기 / 입법활동 지장·변화 둔감 지적에도 / 건강·능력 과시하며 자리보전 나서
지난해 12월 20일(현지시간) 미국 의회가 31년 만에 최대 폭의 감세 계획을 담은 ‘세제개혁안’을 통과시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물을 안겼다. ‘워싱턴 정치’ 타파를 부르짖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동참하기는커녕 방해 세력으로 보였던 의회는 그동안 백악관으로부터 곧잘 비판을 받았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워싱턴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공화당의 의회 독식을 저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체 100석 중 공화당이 51석을 차지한 상원이 민주당에 과반을 내줄지도 관심이다. 고령 의원들을 위한 터전이라는 평가를 받은 상원은 여전히 정중동의 모습이다. 상원의 고령 의원들 다수는 앞으로도 수년간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늙어가는 상원, 전체 100명 중 8명이 80대

미 의회는 지난해 12월 말 날짜를 달리하며 감세안을 통과시켰다. 특히 상원은 전체 100표 중 찬성 51표, 반대 48표, 불참 1표로 결론났다. 불참한 의원은 투병 중인 존 매케인 상원 국방위원장이 유일했다. 방송 앵글에 잡힌 의원들의 표정은 소속당에 따라 갈렸지만, 피곤한 모습이 역력했다. 전날 오후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진 표결 과정의 치열한 공방도 원인이었지만, 하원과 달리 고령 의원들이 다수인 상원의 특성 때문이기도 했다. 

상원의원들은 주요 법안 표결 과정에 대부분 참석하며 힘을 과시한다. 때로는 집권당 소속 의원들도 대통령과 소신이 맞지 않으면 맞상대한다. 지난해만 해도 매케인 위원장을 비롯해 밥 코커 외교위원장, 새드 코크런 세출위원장, 수전 콜린스 의원이 수시로 트럼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백인 우월주의’와 국제사회와의 갈등 야기 등을 비판 대상에 올렸다. 
워싱턴 정치권은 이들의 비판 목소리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해석한다. 이들은 상원에서만 수십 년 의정활동을 펴와 새로운 백악관 주인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장 8년의 임기를 채운 뒤 백악관을 떠난 뒤에도 상원에서 의원으로 활동할 이들이 태반이다.

상원은 초선보다는 재선 이상의 비율이 월등히 높은 곳이다. 상원은 ‘귀가는 없고, 올드보이의 현상유지만 있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의회조사국에 따르면 2018년 1월 현재 상원의원들의 평균 나이는 63세 가까이 된다. 재임 기간은 10년이 넘는다. 40대 의원은 14명에 불과하다. 현재의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이들 중 다수도 80대 이상의 나이에서도 의원활동을 할 가능성이 크다.

오린 해치 재무위원장과 매케인 국방위원장, 코크런 세출위원장 등 80대 의원과 70대 의원은 각기 8명, 17명에 달한다. 80대는 재적 의원의 8%, 70대 이상은 25%에 이른다. 이는 1789년 상원이 개원한 이래 가장 높은 비율이다. 민주당 소속의 최고령인 다이앤 파인스타인 의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화당 소속이다. 해치 재무위원장을 비롯해 척 그래슬리 법사위원장, 리처드 셸비 규칙위원장, 짐 인호프 환경위원장(공화), 팻 로버츠 농업위원장 등 80대 의원들은 곳곳에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감세안 통과 과정만 하더라도 해치 재무위원장이 상임위에서 다른 동료 의원들과 역할을 분담하며 조타수 역할을 했다. 80대 노익장의 과시였다.
테드 코크란.
다이앤 파인스타인.
리처드 셀비.
짐 인호페.
팻 로버츠.

◆문제는 건강, 당사자들은 “이상없다”고 하지만 우려 팽배

80대 의원들이 가진 한표의 의미도 막중하다. 감세안 표결 당시 백악관과 공화당은 투병 중인 매케인 국방위원장과 코크런 의원 등을 포함해 상원 전체 의원을 상대로 총동원령을 내렸다. 이달부터는 지난해 12월 앨라배마주 보궐선거 패배로 상원의 공화당 의석 수가 52석에서 51석으로 준다. 표결 불출석자가 나오면 법안 통과 자체가 힘든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고령 의원들의 건강 문제이다. 지난해 의회에서 감세법안 처리가 더뎌진 것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의견 불일치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령 의원들의 건강문제로 일정이 3차례 이상 변경된 것도 원인이었다. 투병 중인 매케인 국방위원장은 지난달 중순 국방위원회의 의사봉을 일시적으로 인호프 세출위원장에게 넘기기도 했다.
존 매케인.
척 그래슬리.
고령 의원들이 변화하는 시대상을 따라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입법활동에도 지장을 준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고령 의원들 일부는 자신의 건강상태와 능력을 옹호하고 있다. 그래슬리 법사위원장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일주일에 4차례 3마일(약 4.8km) 이상을 달린다고 말했다. 그래슬리 법사위원장은 한발 더 나아가 “일주일에 4차례 이상 3마일을 달릴 수 있다면, (2022년) 다시 출마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뜻대로 2022년 출마해 당선된다면 그는 이듬해 90세 의원이 된다.

고령 의원의 존재는 지역구 유권자들의 선택이기도 하다. 재임 기간에 비례해 권한이 막강해지기에 유권자들은 다선 의원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정치권 인사들도 광범위한 네트워킹을 지닌 고령 의원을 선호하기도 한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보다 12살 많은 해치 재무위원장을 향해 11월 중간선거에 다시 출마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오린 해치.
한때 트럼프 대통령의 정적이었던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해치 재무위원장이 불출마할 경우 유타주를 노릴 것이라는 분석 이후 나온 요구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바람대로 해치 재무위원장이 출마해 당선되면 그가 임기를 마칠 때는 90세가 된다. 그리고 48년 동안 상원에서 재임한 8선 의원이 된다.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존 매케인, 버니 샌더스…상원의원은 대선후보급

이들 80대에 비해 한참 젊은 코커 외교위원장은 중간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코커 위원장은 한때 트럼프 대통령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그는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백인 우월주의’ 비호 발언을 비판하며 사이가 멀어진 뒤 상원의원에 도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표했다. 65세인 코커 외교위원장은 “상원에 더 머물수록 더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며 “그래서 머물면 머물수록 더 지키고 싶은 곳은 상원”이라고 설명했다.

코커 외교위원장의 표현대로 상원의원은 막강한 자리다. 지난 대선만 하더라도 아웃사이더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과 상원의원들의 대결이었다. 본선에서는 백악관 안주인과 상원의원 경력을 지닌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의 싸움이었다. 클린턴 전 장관과 막판까지 경선에서 맞붙였던 버니 샌더스 의원도 2007년 이후 10년 넘게 현역 신분을 유지했다. 마코 루비오 의원과 테드 크루즈 의원 등이 나선 공화당 당내 경선도 다를 게 없었다.

백악관 권좌 도전에 실패한 이들은 다시 상원의원으로 돌아왔다. 샌더스 의원을 비롯해 루비오 의원과 크루즈 의원은 경선 실패 이후에도 의원직을 사수한 경우이다. 앞서 매케인 국방위원장인 2008년 대선에 출마했지만 의원 신분으로 복귀했으며,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고향인 유타주에서 상원의원 출마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민주당 출신으로 상원의원 경력을 바탕으로 대권 도전에 나섰던 이들은 의사당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2008년 대선에서 승리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물론 2016년 대선에서 패배한 클린턴 전 장관도 더 이상 상원의원에 도전할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80대에 대선에 도전한 상원의원은 없었다.

워싱턴=박종현 특파원 bal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