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이럴 땐 욕을 하면 된다. “흥, 일 년에 반을 노네” 등 거슬리는 족족 불평하며 마음속 응어리를 털어낸다. 트집은 점점 심해져 이솝우화의 ‘신포도’처럼 SNS에서는 볼 수 없는 그들의 삶까지 가늠하게 됐다. 고가의 스포츠 장비 사진들을 보고 “동계올림픽이 괜히 ‘부자들의 잔치’가 아니네”라며 혀를 끌끌 찬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사람들이 무슨 잘못을 했나.
이동수 체육부 기자 |
타인에 대한 비방은 박탈감을 떨쳐내는 가장 편리한 방법이다. 그러나 다짜고짜 욕부터 하기 전에 자신이 느끼는 박탈감이 어떤 종류인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스타의 화려한 삶을 겨냥한 비난은 사실상 시기심에 가깝다. 내 것을 뺏겼다는 박탈감보다는 네 것을 갖고 싶은 욕구가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는 격이다. 지금의 삶을 일구기 위해 그들이 해온 정당한 노력을 무시할 이유는 없다.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 외에는 마땅히 해소할 방법이 없다.
반면 보이는 족족 꼬투리를 잡아야 하는 박탈감도 있다. 공정한 기회를 빼앗는 취업 청탁, 사회적 지위에 따라 널뛰는 양형기준 등의 보도를 접할 때 비롯된 감정이 그렇다. 스타의 삶을 정답이라고 강요하는 예능 프로그램 특유의 문법도 마찬가지다. 이는 TV 속 세상과 동떨어진 대다수의 삶을 부정하는 처사다. 이런 허탈함이 만연한 사회는 결코 건강해질 수 없다. 마음 수련을 넘어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만 한다.
TV를 보지 않아도 상대적 박탈감은 피할 수 없다. 내가 비교하지 않아도 남이 나를 비교 대상으로 삼는다. 유독 한국에서 활황을 띠는 비트코인 광풍은 박탈감의 온상이 돼 당분간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상대적 박탈감을 현명하게 해소할 지혜가 필요하다.
이동수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