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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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마리화나에 관대해지는 美…'기호용' 속속 합법화

마리화나 쿠키 파는 카페까지 등장… 마약운전 단속 ‘골치’ / 캘리포니아 올해 1월부터 판매 시작 / 버몬트는 州의회 주도로 합법화 추진 / 성인, 1온스 이하 구매·소지 등 가능 / 언론 “술·담배보다 덜 해롭다” 주장 / 마리화나 산업 2021년 684억弗 예상 / 연방·州정부 갈등… 청소년 탈선 우려
지난 13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마리화나 엑스포에서 한 남성이 마리화나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다.
올해 1월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기호용 마리화나 판매가 시작되더니 최근 버몬트주 하원이 법무장관 반대에도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이 상원을 통과하면 버몬트주에서도 7월 이후 기호용 마리화나 재배·유통 등이 허용된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주의회 주도로 합법화가 추진된 것은 버몬트주가 처음으로 다른 주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환영했다. 미국이 마리화나에 관대해지고 있는 배경 등을 짚어봤다.
◆“술·담배보다 마리화나가 덜 해롭다”

15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버몬트주가 기호용(A·어덜트)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면 콜로라도, 워싱턴, 오리건, 알래스카, 네바다, 캘리포니아와 워싱턴DC, 매사추세츠(7월부터 합법화)에 이어 미국에서 기호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는 9번째 주가 된다. 50개 주 가운데 의료용(M·메디컬)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주는 29개다.

미국에서 기호용 마리화나 합법화 움직임이 활발해진 배경은 여러 가지다. 먼저 ‘의료용’이라는 용어가 무색할 정도로 쉽게 마리화나를 구할 수 있게 된 상황 탓이 크다. 이코노미스트는 “약국에 가서 등이 아프다고 얘기만 해도 의료용 마리화나 처방전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일상에서 너무 쉽게 마리화나를 접하는데 엄격한 법 때문에 범죄자만 양산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됐다.
마리화나 화분.
미 주류 언론들도 오래전부터 합법화를 주장했다. NYT는 2014년 칼럼에서 “20세기 초 금주령을 없애는 데 13년이 걸렸고, 이 기간 몰래 술을 마시거나 선량한 시민이 범죄자가 됐다”며 “마리화나 금지 법안이 통과된 지 40년이 지났는데 술보다 덜 위험한 물질을 금지함으로써 미국 사회에 많은 해를 끼쳤다”고 주장하며 합법화를 지지했다. 신문은 마리화나를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범죄자 양산, 인종주의 확산 등 부작용을 불렀다고 지적했다. 2012년 마리화나 소지 혐의로 65만여건의 체포가 있었는데, 코카인·헤로인 소지 혐의 체포는 25만여건에 불과했다고 덧붙였다. NYT는 “마리화나와 관련해 체포된 사람 상당수가 젊은 흑인 남성으로 인종주의적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술, 담배와 비교해 마리화나 중독은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면서 마리화나를 연방정부 차원에서 합법화하는 게 옳다고 촉구했다.
◆향초·오일·음료 등… 커지는 마리화나 산업

기호용 마리화나가 합법화한 주에서는 만 21세 이상 성인은 1온스(28.4g) 이하의 마리화나를 판매, 구매, 소지, 운반, 섭취할 수 있다. 여섯 그루 이하의 마리화나 재배도 가능하다.

이미 다양한 상품이 팔리고 있다. 수제맥주 바나 카페처럼 깔끔한 마리화나 가게가 수두룩하다. 과일 향이 첨가된 마리화나 향초나 마리화나 오일 가게에서 여성들이 여러 유리병을 열어보며 쇼핑하고, 마리화나 판매점 앞에서는 ‘유기농 예수(Bio-Jesus)’나 ‘죽은 별(Death Star)’ 등 마리화나 브랜드 품평회가 열린다. BAT 등 대기업들도 마리화나가 들어간 담배를 판매하거나 준비 중이다. 마리화나가 가미된 초콜릿 케이크 레시피를 가르치는 요리 학원이 생겼고, 마리화나 캔디나 쿠키, 마리화나 초콜릿 음료 등 식품 사업도 커지고 있다. 미국 당국이 허용하는 의료 및 기호용 마리화나 산업 규모는 2016년 최대 180억달러(약 19조870억원)에서 2021년 684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공개 장소에서의 마리화나 흡연은 원칙적으로 금지다. 이에 콜로라도 덴버에서는 ‘먹는’ 형태의 마리화나 제품을 판매하겠다고 나선 카페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합법화 지지자들은 팔기만 하고 섭취는 못하게 하는 정책의 모순을 해결하는 대안이 될 것이라고 환영하고 있다.
마리화나 운전테스트.

◆‘마약 운전’ 단속 골치, ‘청소년 탈선’ 우려

차량 내 마리화나 흡연도 불법인데, 경찰은 ‘마약 운전’이 늘 것을 우려하고 있다. 2014년 캘리포니아주에서 차량 사고로 숨진 운전자의 38%가 약물이나 마약과 관련이 있었다고 한다. 네바다주의 한 경찰은 “2000년부터 DUI(음주·약물 운전) 단속을 했는데, 대부분 음주 운전으로 적발했지만 사실 마약 운전인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고 한탄했다. 도로에서 혈액이나 소변 검사를 할 여건이 안 됐다는 설명이다. 마리화나 합법화를 통해 마약 운전 사례는 더 늘어났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최근 마리화나를 흡연하고 운전하는 것을 단속하기 위해 일부 주가 드래거사의 마약단속 장비인 ‘드럭 테스트 5000’을 일선에 배치했다고 소개했다. 경찰은 먼저 운전자의 운전 양태, 마리화나 냄새 등을 확인해 의심이 들면 이 기기를 사용해 구강 조직을 채취한다. 10분 안에 마리화나 등 7가지 약물을 확인할 수 있는 이 테스트를 거부하면 운전자에게 혈액 검사를 강제할 수 있다. 하지만 마약 검출 기기 가격이 대당 6000달러로 고가라서 전체 보급에 한계가 있다. 마약 운전에 대한 명확한 법규 마련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정부에서 시작된 마리화나 합법화 확산을 정치 영역으로 끌어들여 배척하고 있다. 주정부가 합법화를 선언해도 범죄 조직과의 연관성 등 일부 조건에서 연방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조항에 따라 연방정부와 지방정부의 갈등도 커질 것이라고 AP통신은 내다봤다. 무분별한 마리화나 흡연이 청소년 탈선과 범죄율 증가를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현재진행형이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