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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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헌의세상속물리이야기] 블러드문, 블루문, 슈퍼문의 삼중주

개기월식 때 붉은빛을 내는 달의 정체는… / 1월 31일 152년 만에 달의 삼중주 펼쳐져
작년 8월, 미국을 가로지르며 펼쳐진 개기일식은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지구와 태양 사이에 끼어든 달의 뒤편으로 태양이 완전히 사라진 2분의 시간은 이를 목격한 이들에게 우주의 경이로움을 일깨워 주었다. 이에 비해 태양-지구-달의 순서로 정렬되며 지구 그림자 속으로 달이 숨는 개기월식은 개기일식에 비해 주목을 덜 받는다. 이는 달 뒤로 숨는 태양이 전혀 보이지 않는 개기일식에 비해 달이 사라지지 않고 희미하며 검붉은 자태를 여전히 보이는 개기월식의 특징 때문일 것 같다.

지구 그림자 속에서도 붉은빛을 내는 달의 정체는 빛의 굴절 현상과 관련된다. 직진하는 빛은 다른 물질을 만나면 방향이 꺾인다. 굴절되는 정도와 방향은 굴절률이라는 물질의 속성으로 결정된다. 공기에서 물로 비스듬히 입사하는 빛은 경계면을 통과할 때 법선, 즉 면에 수직인 방향 쪽으로 꺾인다. 물의 굴절률이 공기보다 크기 때문이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물 밖에서 보면 어떻게 보일까. 물고기를 떠난 빛은 굴절률이 작은 공기로 빠져나올 때 법선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눕히며 꺾여서 우리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사람은 빛이 항상 직진해서 눈에 들어온다고 느낀다. 이에 우리 뇌는 눈에 들어온 빛의 방향을 따라 물속까지 직선으로 연장한 곳에 물고기가 있다고 지각한다. 물속의 물체들이 실제 깊이보다 더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이 때문이다.

지구의 대기도 굴절률을 갖는다. 특히 공기 밀도가 낮은 상층부에서 밀도가 높은 지표 쪽으로 내려올수록 공기의 굴절률이 점점 커진다. 따라서 햇빛이 지구 대기를 통과함에 따라 굴절률이 더 높은 지표면을 향해 서서히 꺾이게 된다. 이때도 사람은 빛이 직진해 들어온다고 느끼므로 태양은 실제 고도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굴절되는 정도는 대기를 통과하는 거리가 가장 긴 일출이나 석양 무렵에 가장 심하다. 석양 무렵 태양의 아래가 지평선에 닿는 순간 사실 해는 이미 지평선 아래로 넘어가 있는 상태다. 이미 숨은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 대기를 통과해 굴절되면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뿐이다.

개기월식 때 달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구의 대기를 통과하는 햇빛이 공기의 굴절률이 더 큰 지표 쪽으로 꺾이면서 그 일부가 지구의 그림자에 숨은 달을 비춘다. 지구의 대기를 이루는 공기 분자들은 햇빛의 성분 중 파장이 긴 붉은색 계열의 빛을 주로 통과시키고 파장이 짧은 파랑이나 보라색 빛은 대부분 측면으로 산란시키는 성질이 있다. 지구의 긴 대기층을 통과해 살아남은 일출과 일몰의 붉은 빛이 달까지 가서 부딪히고 반사돼 지구로 되돌아오는 것, 이것이 개기월식 때 보이는 핏빛 달인 블러드문의 정체다.

한국천문연구원은 올해 주목할 천문현상 중 하나로 1월 31일 밤 9시쯤 시작하는 월식을 꼽았다. 개기월식은 밤 9시 51분에 시작되며 1시간이 넘게 지속될 예정이다. 게다가 이번 월식은 152년 만에 블루문 및 슈퍼문 현상과도 겹친다. 타원 궤도를 도는 달이 지구에 가까워지며 더 밝고 크게 보이는 슈퍼문, 한 달에 보름달이 두 번 차오를 때 두 번째 보름달을 일컫는 블루문을 개기월식과 동시에 볼 수 있다. 이번 달 말일, 150여년 만에 찾아온 블러드문, 블루문, 슈퍼문이 펼치는 삼중주를 즐기러 밤거리로 나서보는 건 어떨까. 망원경 혹은 쌍안경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고재현 한림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