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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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최저임금 인상의 역설

홀로 상경해 월세와 생활비 등을 직접 마련하며 살았던 2010년대 초반, 일주일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았던 시절이 있다. 평일 오후에는 학원 강사 보조를 하고 주말 낮에는 카페에서 일했다. 당시 5000원 초반대였던 최저시급을 그대로 받거나 때때로 약간 상회하는 수준을 적용받았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학교 수업은 평일 오전으로 몰아 들었다. 법으로 정해놓은 ‘최저’ 수준의 임금으로 생활을 영위했던 그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지고 각종 포인트를 모으는 습관, ‘통장요정’으로 등극한 방송인 김생민이 강조하는 ‘노동이즈베리임폴턴트’(노동의 중요성) 정신 등을 익혔다.

최근 뜨거운 감자가 된 ‘최저임금 인상’ 관련 논쟁을 보며 내 인생에서 가장 사회적 약자에 가까웠던 시절을 떠올린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최저임금이 더 높았으면 하는 바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급 받고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약속된 임금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느냐’보다 시급한 문제는 없었다. 올해 11년 만에 두 자릿수 인상률(16.4%)을 기록한 7530원의 최저시급 앞에서 이러한 우려가 훨씬 커졌으리란 추측은 어렵지 않게 가능했다.

실제로 대학가 등에서는 이로 인한 악순환이 시작되고 있다. 고용주들은 신규 채용을 최대한 미루고, 기존 인력들에도 휴식시간을 늘리거나 기타수당 삭감 등 각종 편법을 동원해 “최저임금을 못 준다”는 의사를 굳건히 표명 중이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은 본사가 안 하면 직접 가격을 올리겠다며 폭발했다. 이 같은 소란 속에서 ‘최저임금은 올랐지만 노동자들의 실질 소득은 감소’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인건비 인상분을 반영해 물가는 오르는데 소비는 위축되는 결과를 낳는다. 즉, 잠재적 소비자인 우리 모두의 생활고는 심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더 큰 사회적 갈등과 비용 증가를 예고하는 대목도 있다. 일각에선 “최저임금이 올라서 일자리를 잃게 될 경우 이들의 절망감과 굴욕감은 이전보다 훨씬 클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노동시장 약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복지’ 차원의 정책이 오히려 사회적 약자를 가장 큰 피해자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정지혜 산업부 기자
급진적인 최저임금 인상으로 꾀하는 소득 주도 성장은 당위성을 가진 이상적 모습이지만, 인간의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우리 사회의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 생계와 생존의 문제이니 그렇다. 본사에 시달리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 대학가 영세 자영업자들, 특별할 것 없는 자산 수준을 가진 우리네 아파트 주민들에게 ‘손해를 감수하며 이익을 나누라’고 주문하는 것이 옳은지, 주문한다고 해서 이들이 한마음으로 들어줄지 재삼 생각해 볼 일이다.

지난해 무역 규모가 1조달러대를 회복하고 수출이 역대 최대 실적을 거듭 돌파했지만 이 신기록 행진 기사를 쓰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대외적인 경제지표가 좋다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대다수 국민은 이를 체감하지 못하는 현실이 유감스러웠다. 올해엔 최저임금 인상 여파가 그 역설을 더 키울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한층 더 우울해진다.

정지혜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