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연극의 첫 인연은 여고시절, 개교기념 행사에 셰익스피어 작품의 기억도 안 나는 단역으로 시작됐다. 짧은 출연이었지만 그 여운은 오래도록 몸에 남았다.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가 고교 은사가 만든 아마추어 극단을 찾아가 ‘정복되지 않은 여자’에서 아네트의 엄마 역으로 마음을 달랬다. 21살 나이에 할머니 역을 맡은 것이다. 이후 회장실 비서라는 안정된 자리를 사직하고 극단 ‘까망’에 들어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준비했지만 엄마에게 들통나 “머리를 깎아버리겠다”는 엄포에 포기해야만 했다. 결혼을 한 뒤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줄곧 애들을 키우며 살았다.
“이번 공연을 온 가족이 보러 옵니다. 큰아들은 여자친구도 데려온다 했어요. 하하.”
그는 다시 찾은 연극을 계기로 교육연극지도사 자격증을 딸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박금옥 |
정애경 |
“호프집과 추어탕집… 다 망했어요. 보증금 다 까이고. 친정어머니가 차려준 건데. ‘그게 니 돈이었으면 그리 쉽게 접었겠냐’라는 핀잔도 많이 들었죠. 지금은 19살 고3 나이지만 6살로 살아가는 발달장애우와 퇴원한 50살 중증 암환자를 돌보고 있어요. 제가 성격이 밝아서인지 저랑 있으면 더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에 긍정의 힘을 내고 있습니다. 살아갈 의지를 만들어주는 연극이 든든한 버팀목 구실을 해줍니다.”
박영갑 |
“당시 큰고모가 을지로2가에서 일식요리집 ‘금민’을 운영했는데, 신 감독님과 최은희 선생이 단골이었어요. ‘잘생긴’ 얼굴 덕에 화면을 탔지만 군대에 가면서 끊기고 말았죠. 너무 늦은 감도 있으나 더 늦기 전에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타인의 삶을 살아본다는 것, ‘연기’가 지닌 매력이거든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연극 활동을 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빠듯한 시간을 더 쪼개야 하고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것마저 포기해야 하는 데다 상사의 눈치를 봐가며 별의별 계략을 짜서 빠져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연극을 통해 무대에 오르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신’을 표현하려는 욕구는 곧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생활연극협회 회원들이 27, 28일 공연을 앞두고 ‘맹진사댁 경사’ 마무리 연습을 하고 있다. 남제현·이재문 기자 |
“단, 회사 모르게 다니며 연습하느라 몸이 고달퍼요. 연기도 좋지만 생계도 꾸려야 하니…. 제가 모시는 부장님은 이런 활동을 이해하지 못하시거든요. 전업 배우를 하기엔 아직 제가 가진 재능이 어떤지 몰라 겁이 나서 당분간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할래요.”
삼돌이 역의 진주호(38)씨는 “내가 몰랐던 나를 볼 수 있어 연극이 좋다”고 밝힌다. “직장 생활의 에너지를 연극에서 얻는다”는 그도 “동료들에겐 얘기했지만 윗선에는 이야기가 안 들어가게 조심한다”고 털어놓는다.
“아직은 이해해주는 분위기가 아니더라고요. ‘오, 이런 것도 해?’라고 종종 관심을 보이기도 하지만 일이 바빠질 때면 혹 연극 때문에 집중 못하는 거 아니냐고 질책하듯 묻기도 해 마음을 다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김정민 |
“‘유모가 어느 땐가부터 너무 건방져졌어. 유모가 안주인 같애. 감히 대감 앞에서 ….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안 되지. 재미는 있는데 오버야’라고 꾸짖으셨는데 제게는 다 피와 살이 되는 가르침이죠.”
어릴 적 엄한 아버지 밑에서 ‘연기’란 말도 못 꺼냈는데, 딸 아이는 반대에도 전공을 바꾸면서까지 연기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고, 자신도 서둘러 연극을 시작했다고 들려준다.
이화시 |
“마치 중 1때 영어를 처음 배우던 기분으로 발 떼는 것부터 착실하게 배울 겁니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