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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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재소자들에 따뜻한 관심 주면 범죄 재발 막을 수 있어”

‘무의탁 출소자들의 어머니’ 유양자씨
“오갈 데 없는 재소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주위의 관심이에요. 소외감은 다시 사회적 분노로 표출돼 범죄의 악순환을 야기하더군요.”

전북 전주시 팔복동 산업단지에서 조그마한 영업용 환경세제 제조공장을 운영하는 유양자(75·여)씨는 무의탁 출소자들에게 ‘어머니’로 통한다. 유씨는 한순간의 실수로 교도소 신세를 진 이들이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교화하고, 가족이 없는 출소자들을 자식으로 품어 새 길을 열어준다.

4일 전북 전주시 팔복동 삼풍화학에서 유양자(75) 대표가 무의탁 출소자들을 자식으로 품어온 사연을 들려주고 있다.
김동욱 기자
4일 삼풍화학 세제공장에서 만난 유씨는 “아들과 딸이 돼 직장을 찾고 새로운 가정을 꾸린 이들이 100명은 족히 넘는다”고 말했다. 이 중에는 그보다 나이 많은 아들이 이미 할아버지가 됐으니 이제 증조모가 된 셈이다. 그의 생일이나 명절 때가 되면 수십명의 자식이 가족의 손을 잡고 몰려와 공장 사무실 소파까지 동원해도 잠자리가 부족할 정도다. 그 많은 자식이 새 보금자리를 꾸리게 도운 그녀의 집은 지금도 공장 한쪽에 거실과 욕실이 달린 방이 전부다.

유씨는 여성 기업인을 쉽게 찾아보기 힘들던 1968년 25세의 젊은 나이로 국내 최초의 주방세제 제조회사를 홀로 설립해 승승장구했다. 회사를 차리기 전 약혼해 딸아이까지 가졌지만 결혼에 이르지 못해 홀로 아이를 키우며 남자들조차 쉽지 않은 공장을 억척스럽게 돌렸다. 이런 그녀가 생면부지의 자식들을 두게 된 것은 46세 때부터다.

“배달 직원이 교통 사망사고를 내고 전주교도소에 수감 중이어서 면회를 갔죠. 그때 한 교정위원으로부터 가족이 없거나 가난한 재소자들이 생각보다 많고 범죄에도 취약해 재범의 악순환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는 기꺼이 이들의 ‘어머니’가 되기로 결심했다. 먼저 전주교도소 교정위원으로 참여해 가난한 무의탁 재소자들과 ‘사랑의 고리’를 만들어 영치금을 보내줬다. 그는 지금도 매달 30만원씩 교도소에 보낸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거나 어릴 때 고아가 돼 부모를 찾을 수 없는 무호적자들을 위해 법무부 장관에 건의하고 법원의 허가를 받아 자신의 호적에 올렸다. 호적법은 2008년 폐지돼 현재는 가족관계등록부가 대신한다.

이들이 다른 교도소에 이감되면 출소할 때까지 전국을 찾아다니며 무사히 수형 생활을 마칠 수 있게 도왔다. 형기를 채운 뒤에는 재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의 공장에 데려왔다. 이들은 단순 절도에서 폭력, 살인까지 전과도 다르고 나이도 10대에서 환갑 넘어까지 다양했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처음 터잡은 동산동 세제공장 한쪽에 작은 방 10여 개를 만들어 함께 생활했으나 집주인이 나가라고 해 2004년 지금의 팔복동 공장으로 옮겨왔다.

“대부분 별다른 기술이 없어 처음엔 공장 배달 조수로 따라다녔어요. 그러다 운전면허증과 같은 자격증을 따거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을 수 있게 했어요.”

그는 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일자리를 구해주고 결혼도 주선해 당당한 사회인으로 거듭나게 했다. 그동안 자식 70여명이 결혼했고, 이 중 10여명은 그가 부부의 연을 맺어줬다. 현재 전주 특수학교에서 부부 교사로 생활 중인 외동딸과 사위가 이해해준 게 큰 힘이 됐다.

속상한 일도 많았다. 20대 아들이 수금해둔 돈을 몽땅 들고 달아났다 탕진하고 돌아와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한 것쯤은 애교였다. 50대 아들이 폭력 혐의로 다시 교도소에 들어가 가중처벌 됐을 땐 그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유씨는 그동안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굉장히 꺼렸다. 혹여 과거 일들이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거나 사회생활에 걸림돌이 될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부모가 된 자식들은 이런 어머니를 가족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유씨는 “최근 암 투병 이후 건강이 악화해 더는 아들을 맞을 수 없게 됐고 사업장 운영도 조카들에게 맡겼다”며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밖에 실천하지 못했지만 자식들 모두 건강히 잘 생활하길 바랄 뿐”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전주=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