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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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기초선거

풀뿌리 민주주의에서 기초의회가 계륵이 된 지는 제법 됐다. 1995년 지방자치 시대가 본격 열리면서 광역·기초단체장, 광역·기초의회의원을 주민 손으로 뽑고 있지만 기초의회는 일찌감치 고비용·저효율의 정치로 낙인찍혔다. 순기능이 왜 없을까마는 무보수명예직의 고연봉 유급제 전환, 선진사례 벤치마킹을 핑계로 일삼는 관광외유, 이권 개입, 비생산적인 의회 활동 등에 민심이 등을 돌렸다. 박근혜정부 지방자치발전위원회가 2014년 서울과 6대 광역시 구·군 단위 기초의회를 없애는 내용의 지방자치발전 종합계획을 발표했을 정도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기초의회 폐지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기초의회, 기초의원도 권력이다. 한 줌도 안 되는 권력일지언정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지키려는 게 정치 생리다. 기초의원은 중앙정치 이해관계와 얽혀있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공천권을 쥐고 있어 ‘내 사람’ 부리듯 한다. 지방의원들은 국회의원 눈치를 살피며 충성을 다하는 심부름꾼 노릇을 한다.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됨으로써 생기는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기초의회만이라도 없애면 좀 낫겠다 싶은데 그 길목을 국회가 두 눈 부릅뜨고 지키고 있으니 어림도 없다.

중앙정치의 지방통치를 막기 위해 기초자치단체의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중앙정치의 간섭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지방정치를 펼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이 역시 중앙정치의 기득권에 가로막혀 있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문재인 후보가 정당공천 폐지를 공약했으나 달라진 건 없다. 폐지 법안이 발의돼도 정당과 국회의원들은 거들떠도 안 본다. 기득권 정당의 입김을, 국회의원의 편의를 키우는 알토란 같은 특권을 내놓을 생각이 없는 것이다.

선거법은 다양한 정치세력이 진출할 수 있도록 기초의원 선거구 1곳에서 2~4명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으나 선거구 60%는 2명만 뽑고 있다. 1당과 2당이 나눠 먹기 좋은 구도여서다. 여당이 지방분권 개헌을 하겠다면서 정당공천 폐지, 4인선거구 확대에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보면 가소롭다.

김기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