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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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씁쓸한 ‘하노이댁’ 식당 폐업

눈이 내리던 지난해 초였다. 후배와 함께 광주시 내 한 베트남 식당을 찾았다. 예전 베트남에 갔을 때 쌀국수 맛을 잊지 못해서다. 이 베트남 식당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흰색 바탕에 빨간색과 파란색의 베트남어 간판과 청색의 간이의자, 그릇 종류와 테이블 세팅까지 모든 게 베트남식이었다.

베트남 음식의 기본인 쌀국수를 주문했다. 쌀국수 위에 놓인 고수가 개운한 맛을 더했다. 숯불고기와 국수를 소스에 찍어먹는 분짜도 맛봤다. 마지막으로 숯불 돼지갈비 덮밥인 껌스언을 먹었다.

한현묵 사회2부 기자
음식 맛은 국내 유명 베트남 프랜차이즈 식당과는 사뭇 달랐다. 베트남 일반 가정에서 먹는 전통 음식 맛이 났다. 한국인 입맛에 맞춘 베트남식 퓨전 음식은 아니었다. 그런 때문인지 인근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베트남 근로자들이 북적거렸다.

이 베트남 식당 주인은 5년 전 광주로 시집온 하노이 출신의 결혼이주여성이다. ‘하노이댁’은 하노이에서 식당을 한 경험을 토대로 그동안 모은 전 재산을 털어 광주에 음식점을 차렸다. 한국인 입맛을 고려하기보다는 베트남 고유 맛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나 하노이댁 식당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문을 닫았다. 개업 후 1년을 넘기지 못했다. 대신 이 식당 부근에 유명 베트남 프랜차이즈 식당이 성업 중이었다. 안타까웠다. 하노이댁 식당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자 프랜차이즈 식당이 들어온 것이다. 결국 프렌차이즈 식당의 가격 경쟁에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문을 닫았다. 거대 자본에 하노이댁 식당이 속절없이 무너진 셈이다.

하노이댁 식당을 삼켜버린 프랜차이즈 식당의 음식 맛이 궁금했다. 이전 식당과 비슷한 메뉴를 주문했다. 그런데 맛은 완전히 달랐다. 베트남 무늬를 한 한국 맛이 물씬 났다.

결혼이주여성들의 다문화 식당이 크게 번창한 때는 2011년쯤이다. 행정안전부와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창업지원 영향이 컸다. 코끼리, 반달, 레인보우 등이 당시 나온 다문화 식당 간판이다. 이들 공간은 결혼이주여성들의 일자리와 커뮤니티 역할을 하면서 ‘행복 하우스’가 됐다.

그러나 이들 다문화 식당은 1∼2년이 지나면서 문을 닫기 시작했다. 다문화 식당 대부분은 하노이댁과 같은 전철을 밟았다. 음식 맛으로 손님을 모으면서 자립할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돈을 앞세운 프랜차이즈 식당이 슬그머니 들어섰다. 저가와 할인 이벤트로 하노이댁 같은 식당이 문을 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같은 먹이사슬은 도미노처럼 확산됐다.

하노이댁 식당 폐업은 하노이댁만의 일이 아니다. 자치단체와 지역사회가 나서 하노이댁 식당을 보호해 줄 필요가 있다. 결혼이주여성들이 차리는 소규모 식당 등 자영업에 정부나 자치단체는 아직까지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이제 결혼이주여성들의 코리안 드림인 다문화 식당을 지원하고 보호하는 울타리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한현묵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