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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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보라카이는 시궁창”

보라카이는 필리핀의 대표적인 휴양지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1년 내내 날씨가 일정한 편이고 파도가 거세지 않아 언제 찾아도 좋은 곳이다. 낮에는 백사장에서 일광욕을 즐기거나 파도를 가르면서 제트스키를 탈 수 있다. 요트를 타고 석양을 바라보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다. 밤에 해변 인근 숙소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건 색다른 즐거움이다.

보라카이(Boracay)의 어원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흰색 천’이라는 뜻의 원주민어 ‘borac’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거품을 의미하는 ‘bora’와 흰색을 뜻하는 ‘bocay’의 원주민어에서 비롯됐다는 설이다. 면적 11㎢, 길이 7㎞, 너비 1㎞의 산호섬인 보라카이는 1970년대 독일과 스위스의 여행자들이 발견했다. 초기에는 유럽인들이 주로 방문했지만 고운 모래와 깨끗한 해변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세계적인 휴양지가 됐다.

해마다 200만명 넘는 관광객이 보라카이를 찾는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가는 곳이다.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지난해 보라카이를 방문한 관광객 가운데 한국인이 중국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보라카이가 관광산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상당하다. 한 해 12억2000만달러(약 1조3000억원)에 이른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앞으로 6개월 안에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보라카이를 폐쇄하겠다고 엄포를 놓아 논란이 일고 있다. 그는 최근 한 포럼에 참석해 “보라카이는 시궁창(cesspool)”이라고 하면서 하수와 쓰레기 문제가 섬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관광객의 건강을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보라카이 주민들은 발끈했다. “섬이 폐쇄되면 이곳에서 생계를 꾸려가는 수천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은 어떻게 하느냐”는 항변이다. 환경오염이 심해진 데는 중앙정부도 책임이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관광 활성화는 환경파괴를 부르기 마련이다. 동전의 앞뒷면인 셈이다.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도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엄포를 놓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원재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