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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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서울의 ‘평양 시민’

서울의 ‘평양 시민’

북한이탈주민은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다. 북한을 떠나 남한으로 들어오면 별도의 국적 취득 절차를 밟지 않아도 주민등록 절차만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국민이 된다. 헌법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므로 북한 지역에 거주하는 북한 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들어오면 법적으로 북한에 다시 들어갈 수 없다. 다시 자진 입북하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잠입·탈출)로 처벌받는다.

국내에 입국한 탈북민 수는 지난 해 말 현재 3만명이 넘는다. 조사에 따르면 절반 가량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탈북했다고 한다. 그들 상당수는 남쪽에서도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 전체 탈북민의 24.6%가 기초생활 수급 대상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통일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현재 재입북 탈북민은 모두 26명이다. 당국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재입북자가 더 있을 것이다. 남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북한으로 돌아간 사람이 없지 않겠지만 대부분은 중국에서 납치되거나 북한에 있는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 몰래 들어갔다가 잡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에 남겨진 가족을 인질로 회유와 협박을 받아 넘어간 사례도 있다고 한다.

6·25 전쟁으로 북녘땅을 등진 실향민들은 60년이 훌쩍 넘도록 망향의 아픔을 달래고 있다. 탈북민들 역시 자유와 풍요를 찾아 남쪽 나라를 선택했더라도 고향땅에 대한 그리움은 어쩌지 못할 것이다.

‘평양 시민’ 김련희씨가 지난 12일 북한 예술단이 서울 공연을 마치고 돌아가는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 나타나 “평양시민 김련희다”라고 소리쳤다. 제지하는 우리 측 관계자에게 끌려나오면서도 “집에 빨리 보내줘”라고 외쳤다. 김씨는 “한 발짝이라도 가까이에서 고향의 숨결을 느끼고 싶었다”고 했다. 1969년 평양 생인 그는 지난 2011년 한국에 온 뒤 브로커에 속았다면서 줄곧 북한 송환을 요구해왔다. 2013년 북한이탈주민 정보를 담은 USB를 북한 축구 선수단에 전달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탈북민을 흔히 ‘미리 온 통일’이라고 말하지만 서울에서 당당히 “나는 평양 시민이다”라고 외치는 탈북민을 보니 혼란스럽고 한편으론 안쓰럽다.

김기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