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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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메르스 방역체계 부실책임, 국가가 환자에 배상해야”

법원이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당시 정부의 방역체계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메르스 사태 당시 186명이 감염돼 38명이 사망한 점을 고려할 때 향후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4부(부장판사 송인권)는 18일 메르스에 걸려 ‘30번 환자’로 분류됐다 완치된 이모씨가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정부는 이씨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2015년 5월 오른쪽 발목을 다쳐 대전 대청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16번 환자와 같은 병실에 입원했다가 메르스에 옮았다.

보건당국이 이씨의 감염경로를 추적한 결과 평택성모병원에서 1번 환자(최초감염자)로부터 메르스에 감염된 16번 환자가 오한, 기침 등 증세로 대청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뒤 이씨와 같은 병실에 입원한 것이 주원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정부가 메르스 관리를 부실하게 해 감염됐다며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소송을 냈지만 1심은 정부의 책임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질병관리본부가 서둘러 대처했다면 메르스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며 정부 대책이 미흡했음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우선 2015년 5월18일 삼성서울병원에 입원 중이던 1번 환자에 대한 메르스 의심 신고를 받은 질병관리본부가 즉각 진단검사를 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당시 질병관리본부는 1번 환자가 다녀온 바레인이 메르스 발생 국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검사 요청을 거부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삼성서울병원이 재차 검사 요청을 하자 “다른 호흡기 바이러스가 모두 음성으로 나오면 검사를 하겠다”며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결국 1번 환자는 약 2주가 지나서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재판부는 “질병관리본부가 ‘바레인은 발생국가가 아니라서 의심환자로 분류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질병관리본부 매뉴얼에 따르면 의심환자가 중동 지역을 방문했었다면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메르스 발병국으로만 한정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검사 거절과 지연으로 의심환자 신고 후 약 33시간 뒤 검체를 채취하는 등 과정에서 접촉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질타했다.

법원은 질병관리본부가 1번 환자가 거쳐 갔던 병원을 정밀하게 조사하지 않은 책임도 물었다.

당시 질병관리본부는 1번 환자가 거쳐 간 병원 중 2박3일간 입원했던 평택성모병원에 대해 ‘병실에만 머물렀다’는 가정으로 의료진과 같은 병실 환자 등에 대해서만 조사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1번 환자가 병실 안에만 머문 게 아니라 채혈, 검사 등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등 병실 밖을 수차례 이동했다”며 질병관리본부의 안일한 태도를 비판했다.

아울러 “1번 환자에 대한 심층역학조사가 늦어졌어도 평택성모병원에 대한 조사만 제대로 이뤄졌다면 (이씨가 감염되기 전) 16번 환자를 격리 치료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