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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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택 성추행·폭행' 폭로 잇따라

李연출가 예술감독 사퇴이어/19일 추문 관련 직접 공개 사과/한국극작가협회는 회원 제명
성추행 사실이 잇따라 폭로된 연극 연출가 이윤택(67·사진)이 19일 공개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연극계에서는 14일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가 이 연출가의 성추행 전력을 고발한 후 관련 폭로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이 연출가에게 두 번에 걸쳐 성폭행을 당했다는 글도 나왔다. 또다른 거장 연출가·교수의 성추행을 증언하는 글들도 줄을 이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 연출가의 성폭력 사건과 관련, 연극단체에 대한 진상규명과 수사를 촉구하는 청원이 올랐고, 18일 오후 10시 현재 1만 8000여명이 동의했다.

연희단거리패는 이 연출가가 19일 서울 대학로 30스튜디오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직접 공개사과한다고 17일 밝혔다. 연희단거리패는 이 연출가가 설립 후 예술감독을 맡았던 극단이다. 

앞서 14일 김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과거 이 연출가가 기를 풀어야 한다며 연습 중이든 휴식 중이든 여자단원을 불러 안마를 시켰고 바지를 내린 채 부적절한 행위를 종용했다고 폭로했다. 이 연출가가 공공극단과 작업 중 극단 직원을 성추행한 사실도 밝혀졌다. 같은 날 이 연출가는 연희단거리패를 통해 잘못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이어 연희단거리패는 15일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리고 이 연출가가 연희단거리패 등의 예술감독직에서 모두 물러났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이를 진정한 사죄가 아닌 ‘자체면책’이라고 비판하며 가해자가 직접 사과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 연출가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폭로도 이어졌다.

연희단거리패 전 단원은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1999년 22살 시절 같은 일을 겪었다고 고발했다. 그는 “막내기수 여자들은 조를 나누어 안마중독자인 연출님을 밤마다 두 명씩 주물렀다”며 “학교를 다니다 처음 겪는 사회였다. 강압적인 상황이었고 아무도 거부하지 못했다”고 적었다. 그는 이어 “내가 안마를 해야 하는 날은 밤이 되는 게 너무 무서웠다”며 “사타구니 주변이 혈이 모이는 자리라고 집중적으로 안마를 요구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다른 전 단원은 17일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연극·뮤지컬 갤러리에 과거 이 연출가에게 2001년 19살, 극단을 나온 2002년 20살 두 번에 걸쳐 성폭행을 당했다는 글을 올렸다. 이 단원은 사과를 요구하기 위해 어머니, 지인과 함께 서울 정동극장 근처 한 호텔 커피숍에서 이 연출가를 만났다고 적었다. 그는 “이윤택씨는 저희 어머니에게 저를 사랑해서 그런 일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며 “함께 갔던 지인을 향해 ‘아이고 선배님, 제발 동문에는 소문내지 말아주십시오’라고 했다. 저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단원은 18일 페이스북에 자신이 겪은 성추행을 밝히며 연극계 평론가들, 30년간 연희단거리패와 동지로 살아온 원로들, 소문을 언급하면서도 행동하지 않은 선배들 등 연극인들의 자성을 촉구했다.

고연옥 극작가, 이해성 극단 고래 대표, 김재엽 연출가 등 연극인들도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성폭력 고발을 지지하며 ‘미투’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한국극작가협회는 극작가이기도 한 이 연출가를 회원에서 제명했다.

한편 연극 연출가 황이선은 2002년 서울예대 극작과 시절 연극계 대가로서 극단을 운영하는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18일 페이스북을 통해 고발했다. 황 연출은 성추행이 학내에서 상습적으로 벌어졌음을 시사했다. 그는 “소문들이 있었으나 나는 비껴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착각이었다”며 “연습이 많아 질수록 술자리가 잦아 졌다. 약속이나 한 듯 내가 옆에 앉아야 했다”고 적었다. 손에서 시작한 성추행은 허벅지와 팔뚝으로 이어졌다. 이 교수의 옆자리에는 황 연출가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호출됐다.

앞서 15일 배우 박모씨도 연극계 거장 A씨에게 회식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했으나 동석한 이들 모두 못 본 척 했던 정황을 페이스북을 통해 고발했다. 박씨는 다른 여성과 함께 성추행을 당한 듯 “행운 가득한 대학로의 그 갈비집/ 상 위에서는 핑크빛 삼겹살이 불판 위에 춤을 추고/ 상 아래에서는 나와 당신의 허벅지,/사타구니를 움켜잡고, 꼬집고, 주무르던/ 축축한 선생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죠”라며 “소리를 지를 수도, 뿌리칠 수도 없었어요. 그럴 수 없었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앞에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순간 우리는 그들에게 투명인간이었어요”라고 폭로했다. 그는 참다 못해 가해자의 손목을 낚아채고 ‘전, 선생님 딸 친구예요!’라고 말했으나 동석한 이들이 성추행을 말리기는커녕 ‘니가 걔 친구냐? 세상에 세월 빠르네’라며 딴청을 피운 상황도 밝혔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