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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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대통령 전용기 논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정치권의 대통령 전용기 구매 논란이 딱 그 짝이다. 자기네 집권 시절에 전용기가 필요하다고 목청을 높이던 여당도 야당이 되면 팔을 걷어붙이고 반대한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대통령 전용기 구입 문제가 본격 제기된 것은 노무현정부 시절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10월 출입기자들과의 산행에서 전용기 도입 필요성을 거론했다. “새로 장만하는 결정을 하게 되면 아마 다음 대통령도 해당 없고, 그다음 대통령 때나 쓸 수 있을 것”이라며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협조를 구했다. 이재오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전용기를 구입할 예산이 있으면 5만원 전기세를 못 내는 빈곤층에 따뜻한 눈길을 돌려야 한다”고 쏘아붙였다. 전용기 구매예산안이 전액 삭감됐음은 물론이다. 이명박정부가 들어서자 이번에는 한나라당이 전용기 구매에 목을 맸다. 이번엔 야당으로 공수가 뒤바뀐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이 똑같은 논리로 반대했다. 그러자 한나라당이 과거의 반대 행위에 사과했고, 민주당이 수용하면서 전용기 구매가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그러나 미국 보잉사와의 협상과정에서 가격차를 좁히지 못해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항공 소속 여객기를 임차해 사용 중이다. 전용기가 아니라 ‘전세기’를 타고 있는 셈이다. 이마저 임대 만료기한이 2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민주당을 중심으로 전용기를 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11위에 이른 우리의 국력을 고려하면 이젠 전용기를 보유해도 된다는 설명이었다.

전용기 임차보다 구매가 더 경제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2011년 한국국방연구원 용역 결과 전용기 도입이 민항기 임차보다 비용과 안전성 등에 있어 더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국회예산정책처도 향후 25년 경제성 비교 시 구매가 임차에 비해 4700여억원이 절감된다고 했다. 청와대는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의 심정으로 눈치만 보고 있다. 이번 기회에 정치권이 대승적 차원에서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전용기 내로남불은 이쯤에서 그쳐야 한다.

박창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