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여행] 울렁대는 춘심… 오호, 봄이로구나

경남 양산은 ‘매화천지’ / 쌀쌀맞은 바람에 토라져 달뜬 얼굴로 꽃망울 톡톡톡… 한껏 흐드러진 자태에 홍홍홍
경남 양산 순매원에선 매화와 함께 어우러진 낙동강과 그 사이에 놓인 기찻길을 질주하는 기차의 모습을 한 폭에 담을 수 있다. 하얀 매화 사이로 들어오는 기차를 보면 봄이 품 안으로 들어오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쉬 가시지 않는 한기 속에, 남녘은 다를 것이란 일말의 기대를 품는다. 서울은 아직 두툼한 외투를 입어야 하지만, 남쪽은 외투보다 바람막이 점퍼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란 섣부른 예상을 한다. 이런 막연한 기대는 차에서 내려 맞은 첫 바람에 여지없이 깨진다. 혹시나 해서 입고 온 외투를 여민다. 남쪽도 별반 다르지 않구나라며 기대가 실망으로 변할 때쯤 구름 사이로 햇볕 한 줌이 쏟아진다. 순간의 변화다. 그동안 구름에 가려 답답했는지, 대지에 내리쬐는 햇볕의 강도가 결이 다르다. 햇살이 내리쬔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외투가 부담스러워진다. 햇볕 한 줌에 봄이 확연히 느껴진다. 그래도 남녘은 달랐다.
통도사 일주문.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다. 아직 성에 차지 않지만 봄을 품은 따스한 햇볕이 비추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미묘한 봄볕의 변화를 직접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를 대신 몸으로 알려주는 이가 있다. 봄꽃이라 불리는 대부분의 꽃은 한기가 가신 뒤 완연한 봄날씨가 돼야 고고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이 꽃은 다르다. 다른 꽃보다 한 박자 빠르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 겨울 한기보다는 봄의 온기가 조금 더 많아지는 시점에 제 모습을 나타낸다. 누구나 알아채기 쉽게 흐드러지게 펴댄다. 온몸으로 “이제 봄이 시작되고 있어”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남녘 곳곳에서 본격적인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 매화가 피고 있다. 이맘때 남쪽이면 어디서든 볼 수 있지만, 경남 양산은 다른 곳보다 좀 화려한 ‘봄의 외침’을 들을 수 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다양한 모습이 곳곳에 퍼져 있다.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 하나인 통도사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불보사찰이다.
양산에서 봄의 시작을 가장 먼저 알리는 곳은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 하나인 통도사다. 팔만대장경이 있는 해인사는 법보사찰, 보조국사 이후 열여섯명의 국사를 배출한 송광사는 승보사찰, 그리고 통도사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어 불보사찰이다. 고즈넉하고, 수수한 절집이 이맘때면 어느 곳보다 화려해진다. 지난달부터 한두 송이씩 피기 시작한 분홍빛을 띤 홍매화의 유혹은 이맘때면 극에 달한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도 모자라 계속 돌아보게 된다. 그저 슬쩍 쳐다보고만 가려 해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수령이 350년으로 추정되는 홍매화니 그 기품과 내공이 어련할까 싶다. 이 홍매화는 이름이 따로 있다. ‘자장매’로 부르는데, 신라 때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법명에서 비롯됐다.
통도사의 홍매화가 모습을 드러내면 고즈넉하고 수수한 절집이 어느 곳보다 화려해진다.

통도사 홍매화는 한 그루가 아니다. 극락전 앞 두 그루의 홍매화가 붉은빛을 내며 보는 이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한다. 묘하게 진짜는 바로 볼 수 없다. 극락전에서 미리 심호흡을 하게 한 뒤 약사전을 돌아 만나는 영각(고승의 초상을 모신 전각) 앞에 더 활짝 붉은빛을 발하는 홍매화 한 그루가 서 있다. 앞선 홍매화보다 빨리 펴 더 풍성하고, 색도 짙다. 아직 온전하지 않은 봄을 이곳에서 찾으러 꽤 오랜 시간 나무 아래에 머물지 모른다.
통도사에서 입구까지 약 1.5㎞ 이어진 솔숲 무풍한송로는 솔향기와 계곡물 소리가 어우러져 자연스레 치유를 받는 듯하다.
절집의 고즈넉함도 좋지만 통도사에서 입구까지 1.5㎞ 정도 이어진 솔숲 무풍한송로도 매력 있다. 월정사, 내소사 등의 쭉쭉 뻗은 전나무숲길과는 다른 분위기다. 자기 편한 대로 휘어져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소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솔향기와 계곡물 소리가 어우러진 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자연스레 치유를 받는 듯하다.

좀더 화사한 봄을 마주하고 싶다면 원동마을로 향하면 된다. 원동마을 매실농장 순매원은 이맘때 흰 물감을 뿌려놓은 듯 변한다. 차로 가도 되지만, 기차역인 원동역이 멀지 않다. 무궁화호가 서니 시간을 맞춰 찾아도 된다. 순매원의 매력은 매화와 함께 어우러진 낙동강과 그 사이에 놓인 기찻길을 질주하는 기차의 모습을 한 폭에 담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하얀 매화 사이로 들어오는 기차를 보면 봄이 품안으로 들어오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농장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사진을 찍는 장소와 반대편에 있다. 백매화와 홍매화 등이 어우러진 꽃나무 아래를 걸으며 매화향에 흠뻑 취해볼 수 있다. 순매원에서 원동역 방향으로 영포마을도 매화나무들로 가득 차 봄을 반긴다. 
양산 함포마을에선 미나리를 먹기 위해 삼겹살을 먹는다.
영포마을에 도착하기 전 함포마을에선 비닐하우스들이 눈에 띈다. 바로 미나리깡이다. 이곳에선 생미나리를 쌈장이나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삼겹살도 함께한다. 천태산 줄기를 타고 내려온 맑은 함포천 물을 활용해 데치지 않고 바로 먹어도 되는 것이다. 미나리를 먹기 위해 삼겹살을 먹는 곳이다. 봄을 한가득 입안에 품을 수 있다.

양산=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