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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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노력의 가치, 올림픽의 가치

“이런 컬링팀이 어떻게 갑자기 나타났느냐고 묻는 분들이 계신다. 그런데 우리는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10년 전부터 올림픽만을 바라보며 준비해온 팀이다. 끊임없이 노력해 수많은 어려움을 뚫고 여기까지 왔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최고 스타 중 하나인 여자 컬링 ‘팀 킴’의 연전연승이 한창 화제가 됐던 대회 중반, 김민정 감독이 기자들을 불러놓고 했던 항변이다. 힘든 연습으로 얻어낸 성과가 ‘깜짝 돌풍’으로 치부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우려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이 우려는 현실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후로도 ‘팀 킴’은 연전연승을 계속하며 한국 최초로 컬링 은메달을 따내기에 이르렀다. 덕분에 올림픽을 향한 이들의 10년에 걸친 여정이 대중들에게 주목받았고, 노력을 통해 만들어낸 결실은 더 큰 박수를 받았다.

2018년 3월18일 평창패럴림픽이 감동적 장면들을 남기고 폐막하는 모습을 보면서 김 감독의 이야기가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2월9일 동계올림픽 개막 이후 한 달이 넘는 기간동안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취재하면서 느낀 스포츠의 가치가 감독의 말 속에 응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기자라는 직업의 입장에서만 보면 올림픽은 그다지 즐거운 일터는 아니다. 체육기자가 취재해야 하는 ‘사건’, 즉 경기가 수없이 이어진다. 취재해야 할 것은 많고, 몸은 하나이니 도대체 쉴 틈이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결과에만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과정 없는 결과가 어디 있겠는가. 모든 선수는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특히 그 가운데 승리한 선수들의 노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노력의 과정을 제대로 평가하고 조명하는 데에 가끔은 소홀했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스포츠의 진짜 가치는 이 ‘과정’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17일간의 올림픽과 10일간의 패럴림픽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이를 다시 한번 절감할 수 있었다. ‘팀 킴’뿐 아니라 올림픽 기간 중 만난 선수들은 자신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아 올림픽 메달을 위해 매진해왔다. 승리했을 때 진정한 희열을 느끼는 이유다. 자신의 노력이 결실을 맺고, 그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모습을 지켜보는 관중들은 곧 선수들의 희열에 공감한다. 스포츠의 감동이 배가되는 순간이다.

서필웅 문화체육부
사실 이 공감의 메커니즘은 한동안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어느 땐가부터 ‘아무리 노력해도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생각들이 사회에 통용되기 시작했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입에 붙었다. 스포츠의 세계와는 달리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노력하는 사람을 보고 ‘쓸데없는 헛고생을 한다’고까지 평가절하하는 세태다.

당초 흥행을 우려했던 올림픽이 큰 반향을 일으키며 끝날 수 있었던 것은 이 메커니즘을 그리워하는 우리들의 욕구 때문이 아니었을까. 올림픽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노력의 가치’를 새삼 일깨우는 시간이 됐다. 우리 사회가 망각한 메커니즘을 다시 찾아오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그래서, ‘나도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누구나 가슴속에 새겨 넣으면 좋겠다. 힘들면서도 보람찼던 올림픽 기간을 끝내면서 체육기자가 갖는 작은 바람이다.

서필웅 문화체육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