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에 상륙한 펜스룰은 여성과 ‘사적인’ 접촉을 피한다는 본연의 의미부터 왜곡하고 있다. 직장에서 여성에게만 업무지시를 메신저로 하고, 예정된 출장을 취소해버리고, 업무의 연장과 같은 회식 자리에 오지 말라고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적은커녕 지극히 ‘공적인’ 부분에서 여성이 배제되고 있는 셈이다. 미투 운동의 원흉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보기 때문에 나타나는 발상이다. ‘알아서 조심해주는’ 능동적인 해결 방식이라 주장하지만 실은 여성의 존재를 ‘지움’으로써 리스크를 차단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지워야만 안전하고, 지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직도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술이 동반되는 회식 때 성희롱 가능성이 있으니 예방하는 조치’라는 주장은 어떤가. 술에 잔뜩 취했더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는 게 미투가 나타난 진짜 이유다. 이런 변화의 시작을 위한 노력은커녕 펜스룰을 꺼내드는 것은 여전히 실수할 수도 있다는 생각, 즉 ‘잠재적 가해자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또 불미스러운 사태의 주범이지만 손가락질을 받게 될 희생자(?)가 우리 회사, 우리 팀, 나아가 나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불안에 급급한 인식 수준을 드러낸다. 그러는 동안 힘들게 용기 낸 미투 피해자에게 공감하며 위로와 응원을 보내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뒷전이 되어버린다. 간편히 들먹이는 펜스룰은 그동안 수없이 많은 이 땅의 여성들이 감내해야 했던, 그러나 그 인내조차 한계에 달해 결국 터져버린 미투 운동의 본질을 흐리는 행태임을 알아야 한다.
정지혜 산업부 기자 |
‘쳐다만 봐도 성희롱, 같이 즐겨놓고 여자가 변심하면 강간’이라는 말을 버젓이 하며 속 편히 담을 쌓겠다 하는 현실. 성폭력 기준을 모를 정도로, 상대의 거부의사를 빈번히 곡해할 정도로 낮은 성 인식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오랫동안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관행이랍시고 방치해왔는지 잘 보여준다. 이제부터라도 부족한 젠더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함께 공부하고 노력할 일이다. 펜스룰이란 또 다른 폭력으로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정지혜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