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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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고등래퍼 늘어나길 바라며

“모의고사가 장난이야? 솔직히 말해 봐. 너 지금 반항하는 거냐.”

고교 1학년 여름, 교무실에서 날을 바짝 세운 담임의 눈빛을 마주치자 식은땀이 흘렀다. 핏대를 세우고 삿대질을 하는 그의 손에는 모의고사 시험지가 들려 있었다. 그때도 이른바 ‘똘끼’가 있었나 보다. 시험지 귀퉁이 곳곳에는 당시의 치기어린 ‘랩 가사’가 빼곡하게 씌어 있었다. 기억을 더듬자면 ‘학생과 선생은 점수에 목매는 성적 파트너, 볼 장 다 보면 남이 되니 성적(性的) 파트너만 못하다’는 구절을 휘갈겼다. 담임 입장에선 기가 찰밖에.

안병수 문화체육부 기자
딱히 저항정신이 투철했던 학생은 아니었다. 씁쓸한 기억을 남기고 끝난 백일장은 가슴속에 유독 화가 많았던 탓으로 돌리고 싶다. 혈기가 왕성한 시기라 교실에선 실수로 어깨를 툭 건들기만 해도 곧잘 시비가 붙었다. 청소년기를 흔히 ‘질풍노도’에 비유하지 않는가. 문자 그대로는 ‘빠르게 부는 바람과 미친 듯이 닥치는 파도’이지만, 여기서 빠르다는 의미의 ‘질(疾)’은 병을 앓는다는 뜻도 있다. 통과의례로 끙끙 앓아야 했던 ‘화병’을 풀 방법이 도무지 없었다는 얘기다.

최근 가슴이 뻥 뚫리는 경험을 했다. 근래 막을 내린 고교생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고등래퍼 2’를 보고 나서다. 각자의 꿈은 다를진대, 현대사회에서 획일화된 기준으로 평가받는 인간 군상을 ‘바코드’에 비유한 곡이 압권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끊어버리고만 싶다. 깊은 늪에 빠져 있는 게 훨씬 자연스럽다”며 절망하다가도 “바코드를 횡단보도 삼아 뛰어서 벗어나겠다. 이 네모 밖으로”라며 희망을 노래한다. 공교롭게도 해당 곡을 부른 두 소년은 자퇴생이다. 제도권 밖으로 튕겨 나간 소년들은 자신의 얘기를 진솔하게 털어놓자 비로소 안식을 찾았다.

“시키는 대로 해라. 하고 싶은 건 나중에 해도 된다.”

학창시절 귀에 못이 박이게 듣던 말이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선택권이 없다는 논리를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따라서 ‘닥치고 외워야’ 하는 주입식 교육을 군말 없이 받았다. 아직 이런 분위기가 현재진행형이란 점에서 어린 예술가들의 외침은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른들이 굳이 알려고 들지 않던 10대들의 생각이 밖으로 나온 게 얼마 만인지. 아마 집단 화병 현상을 겪고 있는 고교생들은 물론 그 시절을 추억하는 어른들까지 비슷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리라.

스트레스 공화국으로 불리는 한국에서도 청소년은 특히 우울하다. 통계청이 지난 26일 발표한 ‘2018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고교생의 26.8%가 우울증을 앓았다. 이는 성인(4.5%)보다 훨씬 높다. 반면 ‘청소년은 결정능력이 부족해 부모와 선생의 생각에 따라야 한다’는 항목에는 70.7%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들 나름의 생각이 분명히 세워졌다는 뜻인데도 침묵을 강요당하는 셈이다.

사회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킨 고등래퍼를 계기로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줄 수는 없을까. 당신의 아이가, 혹은 학생이거나 이웃이 축 처진 어깨로 걷는다면 섣부른 충고보다는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보자. 우리보다 훨씬 복잡한 고민거리와 진중한 생각에 놀랄 테니 말이다. 학교 안팎이 고등래퍼들의 작은 경연장으로 변하는 순간, 청소년들이 잃어버린 웃음을 조금이나마 되찾게 되지 않을까.

안병수 문화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