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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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누구나 가슴 속에 섬 하나 있다…누군가 가슴 속에 꽃 되고 싶다

충남 태안으로 떠나는 감성여행
한국의 섬 중 가장 오래된 충남 태안 격렬비열도는 7000만년 전 형성된 화산섬으로, 해식애와 주상절리들이 위용을 뽐낸다. 절벽 곳곳에 괭이갈매기, 가마우지, 박새들이 둥지를 튼 채 비행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는 뉴스 중 하나가 중국 어선의 서해 불법조업이다. 기사를 보고는 막연히 서해 어디쯤이겠거니 한다.

이런 기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곳이지만 주의 깊게 보지 않고, 듣지 않은 채 무심코 넘기는 곳이다.

혹여 지명을 봤다 한들 기억에 오래 남는 곳이 아니다.

마라도, 백령도, 가거도처럼 삶을 영위하는 섬도 아니다. 그저 우리나라에 있는 3300여개 섬 중 하나일 뿐이니, 알지 못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도 환경이 비슷한 섬을 찾는다면 이름만 들어도 애잔함이 묻어나는 독도다.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동쪽 끝 독도와 비슷한 처지지만 우리 국민 대부분이 모르는 섬이다.

이 섬을 모른 채 지낼 수 있지만, 어쩌다가 알게 되면 묵묵히 그 자리에 있어준 것 자체로 ‘참 고맙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북격렬비도와 동격렬비도, 서격렬비도 세 개의 섬이 새가 열을 지어 나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격렬비열도다. 드론 촬영. GNC21 제공
충남 태안의 격렬비열도. 이름에서 강렬함이 전해진다. 충남 지역 서쪽 끝의 섬이다. 태안 신진도항(안흥외항)에서 55㎞ 떨어져 있다. 우리나라 관할해역인 영해를 확정하는 기준점 역할을 하는 영해기점 중 하나다. 이 섬이 있기에 우리 영해가 중국 쪽으로 더 뻗어나갈 수 있었다. 중국에서 동쪽으로 튀어나온 산둥(山東)반도에선 약 270㎞ 떨어져 있다.

그저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에 불과한 이 섬이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어족 자원이 풍부한 격렬비열도 부근 우리 영해에서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이 잦기 때문이다.

동해 독도가 일본과의 외교분쟁 지역이라면, 서해 격렬비열도는 풍부한 어족 자원을 노린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으로 현실에서 어업권 분쟁이 발생하는 지역이다. 이름은 외롭지만, 사소한 하나에도 많은 관심을 받는 독도와 달리 격렬비열도는 관심에서 거리가 멀다. 그러다보니 소리 소 문없이 이 섬을 중국 측에서 매입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격렬비열도는 북격렬비도와 동격렬비도, 서격렬비도 세 개의 섬을 아우르는 이름이다. 이 섬들이 새가 열을 지어 나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격렬비열도다. 이 중 북격렬비도는 국유지지만, 동격렬비도와 서격렬비도는 사유지다. 격렬비열도 중 서격렬비도가 뭍에서 가장 멀다. 2010년 중국인이 양식사업을 하기 위해 서격렬비도를 20억원에 매입하겠다고 나섰지만 매매되지 않았다.

접안시설이나 편의시설을 갖추기 용이한 다른 섬들도 있는데, 식수도 없고 사람이 거주하기 힘든 무인도에서 양식사업을 하겠다는 것은 아무래도 의도를 의심케 한다. 현재 격렬비열도는 외국인 거래제한구역으로 지정돼있다. 하지만 중국 자본이 한국인을 내세운다면 얼마든지 매입이 가능하다.
등대가 있는 북격렬비도엔 정박시설이 없어 섬에 오를 때 조심해야 한다.
등대지기와 함께 섬을 지키는 ‘격렬이’.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섬답게 격렬비열도에 직접 발을 내딛기는 쉽지 않다. 정기 여객선은 고사하고 정박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이 섬을 찾는 이들은 어민들과 강태공이 태반이다. 이들도 섬에 내리기보다는 주위에서 어로활동을 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이 그리울 수밖에 없는 섬이다. 국립해양박물관이 발간한 ‘서해 영해기점 도서’에 따르면 격렬비열도의 등대는 1909년 일제에 의해 설치됐는데, 등대원과 가족들이 거주하다 열악한 환경 탓에 1994년 무인화됐다. 그러다 2010년 중국인의 격렬비열도 매입 논란으로 지정학적 위치가 강조되면서 2015년 7월부터 다시 등대지기가 상주하고 있다. 2인 1조로 보름씩 교대근무를 하며 섬을 지킨다. 등대지기와 이름이 ‘격렬이’인 개 한 마리가 함께 지낸다. 사람이 그리워서인지 다른 곳보다 따스한 봄이 늦게 당도하는 섬이다. 뭍은 이제 여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이 섬은 이제야 동백이 한창이고, 유채가 활짝이다.

◆7000만년간 서쪽 끝을 지킨 섬

정기여객선이 없어 격렬비열도를 가려면 낚싯배를 빌려야 한다. 태안 신진도항에서 출발해 격렬비열도까지 가는 2시간여 항로에서 10여개의 섬을 만나지만, 유인도는 가장 먼저 만나는 가의도뿐이다. 이후 만나는 섬들은 모두 무인도다. 그나마 가의도를 지나 만나는 무인도 옹도까지는 일반인들도 갈 수 있다. 신진도항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을 타면 항아리같이 생긴 형상이어서 이름 붙은 옹도에 내려 섬을 둘러볼 수 있다. 이후 가의도 주변의 사자바위와 독립문바위, 사람 코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코바위 등을 지나 항구로 돌아온다.
격렬비열도 가는 길에 만나는 옹도. 신진도항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을 타면 항아리같이 생긴 형상이어서 이름 붙은 옹도에 내려 섬을 둘러볼 수 있다.
병풍도는 멀리서 보면 병풍에 그린 산세를 떠올리게 한다. 가까이 다가가면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위용에 감탄한다.
옹도를 지나면서부터는 바닷길이 녹록지 않다. 수심이 깊어 기상이 괜찮은 날도 파도가 강해져 바다가 거칠어진다. 바람이 조금만 세지면 배가 다니기 어려워진다. 항구에서 2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격렬비열도가 더 멀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다.

옹도를 벗어나면 다양한 형태의 무인도들을 만난다. 활 모양의 궁시도가 눈에 띈다. 궁시도는 과거 사람이 살던 유인도였다. 섬 정상에 등대가 있고, 섬 중턱 부분을 보면 흰 건물이 있다. 학교로 사용됐던 건물이다. 이를 지나면 석도와 난도, 병풍도, 우배도 등이 나타난다. 난도는 알 모양을 닮아 이름 붙었는데, 괭이갈매기들의 섬이다. 병풍도는 멀리서 보면 병풍에 그린 산세를 떠올리게 한다. 가까이 다가가면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위용에 감탄한다. 격렬비열도까지 가는 섬 중 가장 빼어난 자태를 품고 있는 섬이다.

이 섬들을 지나면 두 개의 섬이 눈에 들어온다. 북격렬비도와 동격렬비도다. 서격렬비도는 두 섬에 가려 더 다가가야 제 모습을 볼 수 있다. 세 섬 모두 무인도지만, 그나마 북격렬비도는 등대지기가 오가기에 보트 정도는 댈 만한 작은 공간이 있다. 
화산섬 격렬비열도는 오랜 세월 부딪힌 파도로 해식애와 주상절리들이 발달해 있다.
봄이 늦는 격렬비열도는 노란 유채와 붉은 동백이 한창이다.
힘겹게 북격렬비도에 발을 내딛는 순간 7000만년 전 공간과 조우하게 된다. 격렬비열도는 한국의 섬 중 가장 오래된 7000만년 전 형성된 화산섬이다. 460만년 전 생성된 독도, 100만년 전 생성된 제주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섬이다. 7000만년 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던 것이다.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기간 부딪힌 파도로 생긴 낭떠러지 해식애와 주상절리들이 위용을 뽐낸다. 배에서 내리면 눈에 띄는 것은 모노레일이다. 등대, 기상관측소 등이 있는 섬 정상까지 물건을 옮기기 위해 설치했다. 그 옆으로 지그재그 길이 정상까지 이어져 있다. 길 옆으로는 유채와 동백이 한창이다. 푸른 바다와 하늘 사이에 노란 유채와 붉은 동백이 어우러져 있다. 다른 섬에서도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이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다. 누가 이곳에 일부러 유채나 동백씨를 뿌렸을 리 없을 텐데, 봄이 되니 노랗고, 붉은 꽃을 틔웠다.

섬을 둘러보면 이곳에 꽃을 심은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절벽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괭이갈매기, 가마우지, 박새들이 바로 그들이다. 수천 수만 마리가 절벽에 둥지를 튼 채 비행하고 있다. 우리 땅 어딘가에서 씨를 묻힌 그들이 서해 끝에 꽃씨를 뿌려 새싹이 자란 것이다. 이 섬은 무인도지만, 엄연히 주인은 있는 것이다.

지그재그로 난 길 양 옆에 핀 유채와 동백을 즐기며 10분 정도 오르면 섬 정상의 등대에 이른다. 그곳에 서면 섬 이름처럼 서격렬비도와 동격렬비도가 양 날개를 펴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북격렬비도가 머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등대까지 오르면 북격렬비도를 둘러보는 것은 끝이다. 이제 남은 건 서격렬비도 넘어 우리 서해를 바라보는 것이다. 뻥 뚫린 망망대해의 시원함과 함께 우리 영토지만 조용할 날이 없다는 막막함이 교차한다. 7000만년 동안 그 자리에서 묵묵히 버팀목이 되어 준 섬이 던지는 묵직한 울림이 아닐까 싶다.
천리포수목원은 ‘푸른 눈의 한국인’ 민병갈 박사가 1970년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한 사립수목원이다.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은 이맘때 설립자 민병갈 박사가 가장 좋아했던 목련을 비롯해 다양한 꽃들이 만발해 화려함을 자랑한다.
천리포수목원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흰 목련부터 짙붉은 ‘벌컨’, 꽃송이가 별 모양을 닮은 ‘큰별목련’ 등 600여종의 목련이 있다.
천리포수목원은 다채로운 색을 뽐내는 꽃 물결이 일고 있다.

◆태안은 지금 꽃바다

푸른 물결이 치는 태안 바다와 달리 태안 땅은 다채로운 색을 뽐내는 꽃 물결이 일고 있다. 꽃바다를 보려면 천리포수목원으로 가야 한다. ‘푸른 눈의 한국인’ 민병갈 박사가 1970년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한 사립수목원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태생의 칼 페리스 밀러는 1945년 미군 정보장교로 한국에 와 1979년 민병갈이라는 이름으로 귀화했다. 낚시를 하기 위해 태안을 찾았던 그가 급전이 필요했던 주민의 부탁으로 이곳 땅을 사들인 것이 수목원의 시작이었다. 이맘때 수목원의 대표 수종은 목련이다. 민 박사가 가장 좋아했던 꽃이 목련이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흰 목련에서 짙붉은 ‘벌컨’, 꽃송이가 별 모양을 닮은 ‘큰별목련’ 등 600여종의 목련이 있다. 목련 외에도 동백나무류, 호랑가시나무류, 무궁화류, 단풍나무류 등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태안 청산수목원은 붉은 잎이 나무를 뒤덮는 홍가시나무 천국이다.
태안 안면도 꽃지해수욕장 인근에서는 튤립 축제가 열리고 있다.
천리포수목원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청산수목원은 붉은 잎이 나무를 뒤덮는 홍가시나무 천국이다. 단색이 주는 매력에 푹 빠질 수 있다. 꽃뿐 아니라 밀레, 고흐, 모네 등 예술가들의 작품을 재현해 놓은 테마정원과 황금메타세쿼이아 등 ‘셀카’ 명소가 가득하다. 안면도 꽃지해수욕장 인근에서는 200여종의 튤립이 향연을 벌이고 있다.

격렬비열도(태안)=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