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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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깨어 있는 시민’의 요건은?

“대학생이면 자기주관이 있는 게 너무 당연한데 지성인으로서 낙제점이라는 평가를 줄 수밖에 없네요.”

대학 새내기 때 신청했던 근현대사 수업 첫날. 교수가 당시 한국사회를 달군 정치사회 현안에 대해 “입장이 뭐냐”는 질문을 던졌다. 개인적으로 주장이 강한 편이지만 이날은 한참을 횡설수설한 끝에 “잘 모르겠다”며 말미를 흐렸다. 전날까지만 해도 관련 주제로 수많은 사설과 뉴스를 접했는데 그때는 왜 똑부러진 입장을 개진하지 못했는지 당시엔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김라윤 경제부 기자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는데, 내가 유독 정치적으로 민감하다고 여기는 이슈에 대해서만큼은 자기주장을 꺼린다는 사실이었다. 부모님이나 각종 매체를 통해 이런저런 견해들을 알게 됐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누군가의 생각’일 뿐이었다. ‘내 생각’이 무엇인지 밝히기엔 경험 자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강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사회 현안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분위기마저 팽배했다. 학교 안에서는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선생님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를 자주 목격하곤 했다.

그때는 수업 시간에 민감한 이슈를 놓고 토론할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꿈 같은 얘기였던 시절이었다. 오히려 고등학생은 판단을 내리기에는 ‘미성숙한 존재’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우리들의 의견을 묻기는커녕 “주관을 갖지 말라”는 어른들이 많았다. 고등학생이 사회단체에 참여하는 것은 일탈로 치부되곤 했다. 그러니 한국에서 대학 신입생이 자기주관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몇 달 새 대학생이 됐다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갑자기 요술을 부리듯 뚜렷한 자기주관을 갖길 기대하는 우리 사회가 ‘참 예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기자도 대학생활을 해나가면서 뭔가 그럴싸한 결론을 빨리 내릴 수 있어야 비난을 피하고 ‘지성인’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책에서 읽었던 인상적인 부분을 내 생각인 양 급히 둘러대는 요령을 피운 적도 있다.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으며 내 생각을 숙성시킬 시간을 갖길 원했지만 상대평가제가 도입돼 적자생존 논리가 지배했던 대학은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요즘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오는 양 극단의 주장들을 접하다 보면 어리둥절해질 때가 있다. 오프라인 세상에서는 토론을 주저하며 쉬쉬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온라인에서 저토록 불꽃 튀는 대결을 펼칠 수 있는 건지 선뜻 와닿지 않는다.

온라인 논객 중에는 그저 주변인으로부터 익숙하게 들어왔던 이야기, 우연히 가입한 카페에서 접한 글귀, 즐겨찾기 된 포털사이트의 댓글 모음 등을 참고 삼아 서로에 대한 맹비난을 퍼붓고 있는 이들이 많다.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주장을 목청껏 외쳐야 ‘깨어 있는 시민’이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듯한 논객들도 보인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에 묻혀 이견에 귀 기울이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논객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드루킹 사건’, 남북정상회담 등을 둘러싸고 극과 극의 주장들이 충돌하는 온라인을 보며 느끼는 아쉬움이다.

김라윤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