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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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스토리] 뼛속 깊이 보면… 사람과 문화가 보인다

과거로 가는 門… ‘타임캡슐’ 고인골 / 유골 통해 성별·나이·신장 추론…당시 사회문화 복원 중요 단서 / 익산 쌍릉서 발견 유골 ‘서동요’ 속 무왕·선화공주 추론 / 자료부족·오염가능성에 정보의 양 많지만 특정 어려워 / 두개골로 성·나이 등 분석 1500년전 소녀 신체도 복원 / 순장자 육류·곡식 골고루 섭취… 천민 희생 판단은 무리
#1. 지난 3월, 전북 익산의 ‘쌍릉’(사적 87호·대왕릉과 소왕릉)에서 나무상자가 나왔다. 상자를 가득 채운 것은 천만 뜻밖에도 두개골 조각 등 사람의 뼈. 쌍릉은 고려사 등의 사서(史書)에 백제 무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라 진평왕 딸 선화공주와의 스캔들을 담은 ‘서동요 설화’의 주인공인 그 무왕이다. 설화를 근거로 하면 무왕의 왕비는 선화공주가 아닐까, 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같은 달, 중국 허난성 문화재고고연구원은 2009년 발견된 고분에서 출토된 뼈가 조조의 것이라고 발표했다. 동아시아의 베스트셀러 삼국지의 주인공 중 한 명인 그 조조다. 연구원은 같이 발견된 여성 2명의 뼈는 조조의 부인들 것이라고 판단했다.

천 년 세월을 넘어 갑작스럽게 흔적을 드러낸 무왕과 조조, 정말 무덤 속 뼈의 주인공은 그들일까.

#2. 소녀의 이름은 ‘송현’. 죽은 지 1500년이나 지나 새로 얻은 이름이다. 송현이의 흔적은 2007년 12월 경남 창녕군 송현동 15호분에서 발견됐다. 당시 이 고분에서는 남녀 4명의 인골이 출토됐다.

이 중 155㎝ 정도의 키에 16세 정도의 나이로 추정된 인골의 신체 복원 작업의 결과가 송현이다.

송현이를 되살린 게 가능하다면 혹시 무왕의 것일 수 있는 뼈 주인의 얼굴을 복원할 수는 없을까.

간단치 않은 의문들이다. 대답을 내놓은 것이 그러하며, 의문에 담긴 함의 또한 마찬가지다. 수백 년, 길게는 수천 년 전 죽은 사람의 뼈를 두고 벌이는 탐구가 쉬울 리 없고, 그 뼈에서 캐낼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질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고인골’(古人骨)에 대한 연구는 큰 발전이 있었다. 이제는 사망 당시의 나이·성별·키 등의 신체적 특징, 식습관, 질병의 유무, 생전에 했던 일 등을 파악하는 게 가능하다. 뼈는 개인의 삶을 증언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의 사회문화적 맥락까지 읽어낼 수 있는 단서를 던져준다.
전북 익산의 쌍릉 발굴 후의 모습. 발굴 조사를 통해 쌍릉은 백제의 왕릉급 무덤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제공
◆성별·나이·신장 등 뼈가 알려주는 정보… 오염 가능성도 있어

쌍릉 고인골의 주인을 밝히려면 성별부터 가늠해야 한다. 두개골을 들여다보면 남여 구분이 가능하다. 남성의 두개골은 여성의 그것에 비해 각진 형태다. 또 눈 윗부분, 머리 뒷부분 등이 발달해 돌출되어 있다. 골반뼈도 성별을 확인할 때 종종 이용된다. 여성의 골반에는 자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남성의 것에 비해 넓다.

사망 당시의 나이도 확인해야 한다. 이때는 치아가 유용하다. 유아치가 전부 돋아나는 3살 무렵, 유아치가 모두 빠지고 영구치로 바뀌는 11살 이후, 영구치가 자리 잡은 20대 초반까지의 연령 추정이 가능하다. 또 치아의 마모 상태가 연령 확인의 근거가 된다. 이 외에 팔다리 뼈를 활용한 신장, DNA 분석을 통한 친연관계, 화학신호를 근거로 한 식생활 정보 등도 뼈를 분석하면 얻을 수 있다. 쌍릉 뼈가 무왕, 선화공주의 것이라면 최소한 두 가지의 사실이 확인되어야 한다. 첫째, 남녀의 뼈가 섞여 있어야 한다. 둘째, 남성의 뼈가 있다면 그것은 사망 당시 나이가 40대 이상이어야 한다. 무왕의 재위기간(600∼641년)이 40년이 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이 충족되면 신체적 특징과 식습관 등의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데, 이런 정보들이 뼈 주인을 무왕이나 선화공주로 ‘특정’하는 근거가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두 사람의 키나 평소 즐겨 먹은 음식 등을 알려주는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쌍릉’(사적 87호·대왕릉과 소왕릉)서 나온 나무상자.
쌍릉 뼈의 주인을 확인하는 작업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처음 출토될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쌍릉 첫 발굴은 1917년 야쓰이 세이치라는 일본인 학자가 주도했다. 그의 발굴은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은 날림이었는데, 당시에 나온 뼈를 한데 모아 정리해 둔 것이 이번에 발견된 나무상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야쓰이는 인골 출토와 관련된 사실을 전혀 기록해두지 않았다. 동아대 김재현 교수는 “무덤의 한가운데서 나왔는지, 아니면 한쪽 구석에 나왔는지, 부장품과의 배치 관계는 어땠는지 등을 함께 봐야 인골의 정체를 보다 구체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쌍릉이 일제강점기에 광범위하게 벌어진 도굴을 피해가지 못했다면 오염 가능성도 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이성준 학예연구실장은 “도굴을 하면서 함부로 뼈를 만지거나, 침이 튀는 등의 일이 있었다면 성별을 바꾸어 판별하는 것과 같은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다”며 “(일제강점기의 발굴 상황 등을 감안해) 쌍릉 뼈의 오염 가능성에도 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뼈로 되살린 얼굴, 같은 연령대의 평균치

발굴된 지 얼마되지 않은 쌍릉 뼈를 두고 얼굴 복원 가능성을 점치는 것은 현재로서는 이르다. 그러나 얼굴 복원은 고인골 연구의 가장 적극적인 형태로, 학제간 협업을 통해 최근 몇 년 사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섣부른 것이라고 해도 한번쯤 떠올려 볼 만한 기대이다. 얼굴 복원은 두개골의 형태학적 분석을 통해 인종, 성, 나이 등을 추정하고 눈, 코, 입 등 얼굴의 주요한 형태소를 예측해야 한다. 이 결과에 따라 현대인의 얼굴 피부 두께 자료 등을 복원에 활용한다. 송현이의 경우 두개골이 온전히 남아 있었고, 16세가량의 소녀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복원이 가능했다.
송현이 말고도 김해 대성동고분군 57호에서 나온 뼈를 토대로 가야 여성을 복원한 사례가 있다. 이 여성은 다리 근육이 발달하고, 머리맡에 철제투구가 놓여 있어 ‘가야 여전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정을 낳기도 했다.

뼈만 가지고 복원한 과거 인물의 얼굴은 실제와 얼마나 닮았을까. 특정 연령대 남녀 얼굴의 평균치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송현이 복원에 참여했던 이성준 실장은 “인상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인 눈동자 색깔, 코나 귀 등의 형태는 뼈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실제와 얼마나 닮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순장, 상류층이 대상이 된 자발적 죽음(?)

순장은 고대 매장 문화하면 연상되는 풍습 중 하나다. 강요된 죽음, 생매장, 극도의 분노와 슬픔 등을 동반하기 때문에 노예, 포로 등 사회 최하층이 순장에 희생되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순장자의 뼈를 분석한 결과는 이런 일반적 인식과 사뭇 대비되는 내용이 적지 않다.

순장 무덤으로 유명한 경산 임당, 고령 지산동에서 발견된 순장 인골은 무덤 주인과 비슷하게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하늘을 향해 반듯이 누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뚜렷한 외상의 흔적도 없었다. 생매장을 당하거나 외부의 타격으로 죽음을 맞았다면 나올 수 없는 자세 혹은 상태다. 화학적 분석 결과도 흥미롭다. 순장자들은 대체로 육류와 곡식을 골고루 섭취했으며, 육류 섭취가 더 많았던 사람의 뼈도 있었다.

이 같은 결과를 종합하면 순장자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거나 독살 같은 방법이 활용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론이 가능하다. 순장자의 죽음에 최소한의 예우가 작동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 육류 섭취가 많았다는 점에서 상류층인 무덤 주인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던 사람이거나, 적어도 최하층민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