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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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단식

1983년 5월 신문 한 귀퉁이에 “재야인사의 식사문제” “정치 현안”이라는 단신이 실렸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23일간 벌인 단식 관련 기사였다. 정부의 보도통제 때문에 ‘단식’이라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수염을 깎지 않아 초췌한 얼굴의 YS가 병원에 실려간 사진을 본 국민들은 그제서야 정치탄압 실상을 깨닫게 됐다.

단식은 고대 아일랜드에서 불의에 항거하기 위해 가해자의 집앞에서 벌이는 의사표시였다. 대문 앞에서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집주인에게 치욕이 된다는 점을 노린 것이었다. 인도에서도 돈을 돌려받기 위해 채무자 집앞에서 ‘정의 실현’을 요구하며 단식하는 관행이 있었는데 보다 못한 정부가 금지해 버렸다. 마흐트마 간디의 단식은 역사적으로 뿌리가 있는 투쟁방식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5공화국 때 탄압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단식이 시작됐다. 이후 정치인들의 전유물처럼 됐다. 2003년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비리에 대한 특검 도입을 촉구하며 단식했다. 격려 차원에서 방문한 YS가 “굶으면 죽는데이”라고 했다. 유명인사들이 몰려들면서 단식투쟁의 효과를 봤다.

문재인 대통령은 의원시절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유민아빠’ 김영오씨의 단식을 만류하러 갔다가 동조 단식했다. 박영선 의원이 ‘특별법 제정하라!’고 쓴 피켓을 들고 나타나는 등 여론이 불타올랐다. 헌재의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인용이 발표된 뒤 문 대통령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팽목항일 만큼 세월호사건은 그의 정치적 자산이 됐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의원시절 이라크 전투병 파병을 반대하며 13일간 단식농성을 하다가 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다. 반전 평화라는 어젠다를 선점했고, 시민사회단체와 전대협 출신 인사들의 구심점이 됐다. UAE 등 중동국가들의 관심을 그냥 받은 게 아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며 단식농성 중이다. 드루킹 수사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고발 지시로 시작된 것인데 공수가 바뀔 상황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단식은 정치인의 명운을 좌우한다. 이번 단식도 정치적 승부처가 될까.

한용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