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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댓글이 여론인가

세계일보는 몇 해 전 지면에 ‘오늘의 댓글’이란 코너를 운영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반응이 좋은 기사를 골라 어떤 댓글이 달렸는지를 소개했다. 댓글로 상징되는 누리꾼들의 생생한 의견을 들어보자는 취지였다.

소개할 댓글은 기사를 쓴 기자가 직접 골라 정리했는데 선정작업이 생각보다 곤혹스러웠다. 신문 지면에 옮길 만큼 정제된 표현의 댓글을 찾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각 포털은 공감 수가 가장 많은 댓글을 ‘베댓’(베스트댓글)이라며 상위 목록에 보여준다. 다수가 공감한 의견으로 여길 수도 있겠으나 그 내용을 보면 과연 여론의 대표성을 지니는지 의문이 든다. 상당수 베댓이 기사에 대한 의견이라기보다는 다수 누리꾼의 환심을 사려고 지어낸 작위적인 글처럼 보여서다.

권구성 사회부 기자
베댓이 되려는 목적으로 쓰인 댓글은 대체로 자극적이다. 짧은 문장으로 기사 내용을 풍자하는 데 목적을 두기 때문이다. 전·현직 대통령들을 가리키는 ‘쥐박이’, ‘닭그네’, ‘문재앙’ 같은 단어는 풍자를 넘어 비하에 가깝다. 때로는 이런 표현들이 뜨거운 반응을 얻어 댓글로 도배되기도 한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 만큼 이런 댓글이 잘못됐다고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여론으로 비친다는 점은 경계심이 든다.

실제로 댓글은 여론에 영향을 미친다. 댓글을 읽은 이용자가 내용에 공감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여론인 것처럼 인식하고 분위기에 동조하는 이른바 ‘편승효과’(bandwagon effect)가 그것이다. 댓글이 여론을 조작하기 위한 목적으로 악용된다는 것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이나 요즘 드루킹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기사를 쓰는 기자 입장에서도 댓글은 신경 쓰이는 존재다. 때로는 기사의 마침표를 찍는 것이 댓글이란 생각마저 든다. 기사에 대한 평가와 반응이 한 줄 댓글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베댓인 경우는 그 기사의 종지부가 된다. 온라인상에는 이런 댓글 반응을 의식해 일부러 자극적 기사를 생산하는 매체도 여럿 있다.

지난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설문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검색·뉴스 플랫폼’을 통해 기사를 읽는다고 답한 이가 전체 응답자의 77%에 달했다. 국민 10명 중 거의 8명이 네이버·다음 같은 포털로 기사를 접한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댓글이 국민 77%의 여론을 대변한다고 보긴 어렵다. 네이버 댓글 통계를 집계하는 ‘워드미터’에 따르면 네이버 기사에 댓글을 다는 이용자는 전체의 0.9%에 불과하다. 댓글을 하루 10개 이상 올리며 적극적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이용자는 0.029% 남짓이다. 극소수 이용자가 단 댓글이 마치 다수 여론의 흐름인 양 인식되는 것이다.

오늘날 댓글이 우리 사회의 공론장 역할을 일부 수행하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드루킹 같은 세력이 댓글을 악용했다고 해서 댓글의 순기능마저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공론장은 목적만큼이나 역할 자체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댓글이 사회적 약자도 평등하게 오를 수 있는 발언대인지는 의심스럽다. ‘여론’인 줄 알았던 댓글이 실은 일부 집단의 ‘사리사욕’을 위한 놀이터였다는 사실은 공론장의 존재에 회의감마저 들게 한다. 우리 사회 공론장 역할을 해야 할 댓글이 정작 공론화가 필요한 이슈들을 묻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권구성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