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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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분단의 궁예도성

궁예는 미륵을 꿈꿨다. 미륵불은 불가에서 먼 훗날 중생들을 구원하기로 예정돼 있는 미래의 부처. 미륵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후 자그마치 56억7000만년이 흐른 후 도솔천을 건너 이 사바세계에 홀연히 출현한다. 미륵을 자처하며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는 중국과도 자웅을 겨룰 수 있는 대제국 건설을 꿈꿨다. 그래서 905년 도읍을 개성에서 철원으로 옮기고, 911년 국호를 ‘마진(摩震)’에서 ‘태봉(泰封)’으로 바꿨다. ‘태봉’은 ‘천지가 어울려 만물을 낳고 상하가 어울려 그 뜻이 같아지는 봉토’라는 뜻이다.

문화재청은 엊그제 “문화 분야의 남북 협력이 본격 시작되면 비무장지대(DMZ)에 있는 ‘궁예도성’ 공동 발굴조사와 천연기념물에 관한 공동연구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궁예도성은 DMZ의 대표적인 역사 유적지. 외성 12.5km, 내성 7.7km, 궁성 1.8km로 이뤄진 엄청난 규모다. 조선의 한양 도성이 18km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1940년대 여러 유적 유물이 확인됐고, 궁성 석등이 국보 118호(광복 전)로 지정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와 분단을 거치며 궁예도성은 사실상 사분됐다. 서울∼원산 간 경원선 철도가 도성을 동서로 나눠 놓더니, 해방 이후에는 군사분계선(MDL)이 남북으로 양분하고 있다. 현재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정확히 반쪽은 남한으로, 또 다른 반쪽은 북한으로 양분된 형국이다. 그래서 남북 공동 발굴조사가 불가피하다.

궁예도성에 대해 그동안 남북이 공동조사하자는 이야기는 몇 차례 나왔지만, 실제 조사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2015년 11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도 발굴사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흐지부지됐다. ‘판문점 선언’으로 남북관계가 중대 전기를 맞으며, 분단의 상징이었던 궁예도성이 남북 화해의 아이콘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말년의 궁예는 ‘폭군’으로 기록됐지만, 태봉의 이념은 고려 건국의 토대가 됐다. 남북의 학자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유적을 조사하다 보면 미륵세계 등 1100년 전 궁예의 꿈도 새롭게 조명을 받지 않을까 싶다.

박창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