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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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기하학의 운명

기하학은 고대 이집트에서 땅의 넓이와 둘레를 측정하는 실용적 학문으로 시작했다. 영어로 geometry라 하는데, geo는 토지를, metry는 측량을 뜻한다. 그리스인들이 도형 개념을 세우고 연역적 증명을 시도해 기하학을 급속히 발전시켰다. 플라톤은 자신이 세운 아카데미아 정문 현판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 문 안에 들어오지 말라”고 써붙였다고 한다. 여기서 공부한 유클리드는 플라톤 철학을 반영해 기하학을 체계적으로 정비했고 ‘기하학의 아버지’라는 칭송을 듣는다. 이집트 왕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기하학을 터득할 지름길을 묻자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다”고 답변한 것으로 유명하다.

유클리드의 저서 ‘기하학 원론’은 2000년간 최고의 수학책으로 평가받는다. 중국 명나라 말에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와 서광계가 번역해 ‘기하원본(幾何原本)’이란 이름으로 펴냈고, 18세기 초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정조 때 국내 첫 천주교 영세교인인 이승훈이 청나라에 가서 서양인에게 이 책을 받아 읽었다는 기록이 있다. 실학자 이규경은 이 책이 배우기가 어려워 여러 사람들에게 애를 먹였다고 했고, 이가환 같은 이는 이 책을 100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읽고 또 읽던 그 시대 공부법을 적용한 탓이다. 국문학자 양주동은 수필 ‘몇 어찌’에서 기하라는 말을 접하고 ‘몇 기(幾)’, ‘어찌 하(何)’만 되뇌다가 한참 후에 영어 geo를 소리나는 대로 한자로 적은 것임을 알았다고 했다.

교육부가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범위에 기하 과목을 제외하기로 한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학생의 학습부담을 줄이려는 조치라지만, 교육 현장에선 수학교육의 파행을 우려한다. 과학기술 분야 석학 단체인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어제 ‘미래지향적 수학교육을 위한 제언’에서 “2022학년도 수능부터는 기하 과목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면서 “사고력을 키워주는 대표 학문인 수학의 교육범위를 축소한 것, 특히 공간적 상상력을 배울 기하를 배제한 것은 매우 아쉬운 결정”이라고 했다. 교육부가 또 한 번 헛발질을 했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