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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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곁을 떠난~] '사랑을 택한' 에드워드 8세, 고상돈, 첫 영구결번 루 게릭

 


[이번 주 우리곁을 떠난 별 또는] '사랑을 택한' 에드워드 8세, 에베레스트 첫 발 고상돈, 첫 영구결번 루 게릭

▲ 5월 28일 1972년 영국 에드워드 8세, 사랑을 위해 왕관을 버린 인물

현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은 큰아버지인 에드워드 8세(1894년 6월 23일 ~ 1972년 5월 28일)가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지금 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

에드워드 8세는 1936년 1월20일 왕위에 올라 채 11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같은 해 12월 11일 퇴위를 발표, 왕좌를 동생인 조지 6세(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에게 물려 줬다.

그는 이혼 소송 중이던 미국 유부녀 월리스 심슨과 사랑에 빠져 왕실과 내각의 심한 반대에 부딪치자 왕위를 놓아 버렸다.

윈저 공에서 신분이 떨어졌지만 사랑하는 심슨(왼쪽) 부인과 행복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에드워드 8세의 모습.

이후 윈저 공으로 신분이 떨어진 그는 1937년 프랑스로 건너가 심슨 부인과 결혼했지만 어머니의 엄명에 따라 영국 땅을 밟지 못하다가 1965년 런던을 찾아 조카 엘리자베스 2세 등의 문안 인사를 받았다.

윈저 공이  1972년 5월 28일 프랑스에서 별세하자 영국 왕실은 그의 시신을 운구해 왕실 묘지에 안장했다.

심슨 부인은 1986년 사망, 나중에 남편 곁에 묻혔다.

이들의 사랑은 여러 영화의 모티브가 됐으며 2011년 영화 킹스 스피치에도 에드워드 8세가 등장한다. 

▲ 5월 29일 1979년 고상돈, 우리나라 첫 에베레스트 정복자로 산과 함께 운명을

고상돈(1948년 12월 29일~1979년 5월 29일)은 우리나라 산악인 중 처음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를 밟은 주인공이다.

제주도가 고향인 그는 1977년 에베레스트 원정대(대장 김영도, 대원 19명)의 제주대표로 참가했다.

1차 정상 공격조였던 박상렬 부대장이 28개의 산소통을 다 쓰는 바람에 정상 100m를 남겨 놓고 돌아섰다.

이에 2차 공격조 고상돈이 셰르파(Sherpa) 펨바 노르부와 함께 등정 7시간 만에 현지시간으로 9월 15일 낮 12시 50분(한국시간 오후 4시 30분)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다"고 정복 사실을 무전으로 알렸다.


한국 등산계는 1971년 네팔정부에 에베레스트 입산 허가신청을 처음 낸 뒤 6년에 걸쳐 도전끝에 고상돈에 의해 꿈을 이뤘다.

세계에서 8번째 국가, 등반 팀으로는 14번째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했으며 세계에서 처음으로 몬순(계절풍) 기간인 9월중 등반과 21일간의 고속 캐러밴 등 여러 가지 기록을 남겼다.

국민적 영웅으로 떠 오른 고상돈은 1979년 북아메리카 최고봉인 알래스카산맥의 매킨리(McKinley 6194m) 원정대에 참가, 1979년 5월 29일 등정에 성공한 후 하산하다가 자일 사고로 추락해 31살의 아까운 나이로 사망했다.

▲ 6월 2일 1941년 루 게릭, 메이저리그 첫 영구결번 


야구계 신사 루 게릭(1903년 6월 19일~1941년 6월 2일)은 메이저리그 역사를 말할 때마다 베이브 루스와 함께 늘 거론되는 인물이다.

베이브 루스와 함께 1920~1930년대 양키스 전정시대를 이끌었으며 메이저리그를 최고 인기스포츠로 끌어 올린 주역이었다.

명문 컬럼비아 대학을 다닌 엘리트 출신, 미남, 2130게임 연속출장이라는 대기록 등 흥행 요소를 두루 갖고 있었다. 1925년 6월1일부터 1939년 4월30일까지 그가 세웠던 연속출장 기록은 1996년 9월 6일 칼 립켄 주니어에 의해 깨질 때까지 57년간 위대한 기록을 남아 있었다.

근위축성 측색경화증을 진단받고 1939년 은퇴한 루 게릭에 대해 양키스 구단은 메이저리그 사상 처음으로 그의 등번호 4번을 영구결번 처리했다. 

1939년 7월 4일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루 게릭 은퇴식. 루 게릭은 "지금 이 순간,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운 좋은 사람입니다"라는 감동적인 마지막 인사말을 남겼다. 이날 양키스는 루 게릭의 등번호 3번을 영구결번처리하는 것으로 그의 공을 기렸다. 이는 스포츠 사상 첫 영구결번으로 이후 이를 본받아 야구는 물론이고 각종 스포츠에서 최고스타를 대접하는 의미에서 영구결번 행사가 진행됐다.

또 1939년 말 명예의 전당 헌액자를 뽑는 전미야구기자협회는 게릭을 유예기간 없이 곧바로 명예의 전당에 올려 놓는 것으로 그의 공을 기렸다.

루 게릭은 2년여 투병 끝에 1941년 6월 2일 세상을 등졌다. 근위축성 측색경화증은 '루 게릭병'으로 불리게 됐다. 지난 3월 14일 세상을 떠난 세계적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도 루 게릭병을 오랫동안 앓다가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