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기자가만난세상] H형에게 내일이었을 오늘

H형. 어느덧 형이 우리 곁을 떠난 지도 3년이나 됐네. 아직도 그때 기억이 생생해. 2015년 5월3일 새벽. 난 동네친구들과 술을 먹고 거나하게 취해 있다가 형 소식을 들었지. 형이 그 빌어먹을 암세포(골육종)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 친구들과 술이나 마시고 있던 내 모습이 너무나 한심하고 형한테 미안해서 그 자리에 앉아서 몇십분을 펑펑 울었어. 형의 빈소를 지키는 3일 동안 참 많이도 울었지. 아직도 형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형이 아프기 전에 단체로 스튜디오에서 정장을 차려입고 찍은 사진만 봐도 괜스레 서글퍼져. 아마 형 이름에 무덤덤해지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H형, 이번에도 우리는 형이 잠들어 있는 전주 천호성지에 다녀왔어. 형을 보내면서 우리끼리 작은 약속을 하나 했거든. 매년 5월 초에는 형을 보러 오자고. 다들 바쁘고, 외국에서 공부하는 사람도 있다 보니 완전체 12명이 가진 못했지만, 우리의 5월 초 주말 1박2일은 항상 형을 위해 쓸 거야. 대학 시절엔 매일같이 어울려서 술 마시고 떠들던 우리가 이젠 가정도 생기고, 직장일이 바쁘다 보니 일년에 10번도 채 보기 힘들어졌어. 그래도 우리가 형을 보러오기로 한 5월 초 주말은 되도록 다 모이고 있어. 어쩌면 그게 형이 우리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 아닐까 싶어.

남정훈 사회부 기자
이번에도 어머님을 뵈었어. 3년째 뵈면서 항상 하는 생각이 있어. 어머님은 우리가 잊지 않고 형을 보러오는 걸 참 고마워해 주셔. 우리가 내겠다고 해도 카운터에 미리 우리 카드는 받지 말라고 얘기하실 정도로 기어코 사주려고 하셔. 근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 우리가 하나둘씩 가정을 꾸리고, 아이까지 데리고 오는 모습을 보면서 형의 부재를 더 크게 느끼시진 않을까 살짝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하더라고. 그래도 형 어머님은 우리 모두의 어머님이라 생각하고 매년 잘 모실게.

우리 얘길 전해 드리자면, 형이 없는 3년 동안 많이 변했어. 형이 떠난 이후 03학번 형들 5명이 다 장가를 갔어. 벌써 아들 둘을 낳은 형도 있어. 그리고 내 04학번 동기들도 6월에 2명, 9월에 1명이 장가를 갈 예정이야. 이제 나만 싱글이야. 아마 형이 살아 있었다면 ‘남씨야, 너도 빨리 결혼해야지’라고 말했겠지? 그래도 나이에 떠밀려서 결혼하지는 않으려고 해.

우리나라도 확 바뀌었지. 형이 싫어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이 됐고, 형이 좋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계자라 할 수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 가 있어. 프로야구 SK는 요즘 잘 나가고 있고. 형이 좋아했던 걸 떠올리니 수다를 떨게 되네….

형이 천국으로 갔을 때가 34살이었잖아. 이제 내가 34살이 됐어. 형은 앞으로도 영원히 34살이겠지. 이제 내년이면 형보다 1살을 더 먹게 되는데 형보다 더 어른이 될지는 잘 모르겠어. 천호성지에서 잠들어 있는 형을 바라보면서 ‘형이 너무나도 살고 싶었을 내일을 살고 있는 내가 과연 잘살고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요즘 일이 뜻처럼 되지 않거나 할 땐 욕도 하고 짜증도 많이 부렸는데, 이제 형 생각을 하면서 ‘그래도 나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고 되뇌며 좀 더 웃으면서 살아볼게. 오∼랜 시간 뒤에 형을 만났을 때 떳떳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살게. 지켜봐 줘. 내년 5월에 다시 봐, H형. 사랑해.

남정훈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