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형, 이번에도 우리는 형이 잠들어 있는 전주 천호성지에 다녀왔어. 형을 보내면서 우리끼리 작은 약속을 하나 했거든. 매년 5월 초에는 형을 보러 오자고. 다들 바쁘고, 외국에서 공부하는 사람도 있다 보니 완전체 12명이 가진 못했지만, 우리의 5월 초 주말 1박2일은 항상 형을 위해 쓸 거야. 대학 시절엔 매일같이 어울려서 술 마시고 떠들던 우리가 이젠 가정도 생기고, 직장일이 바쁘다 보니 일년에 10번도 채 보기 힘들어졌어. 그래도 우리가 형을 보러오기로 한 5월 초 주말은 되도록 다 모이고 있어. 어쩌면 그게 형이 우리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 아닐까 싶어.
남정훈 사회부 기자 |
우리 얘길 전해 드리자면, 형이 없는 3년 동안 많이 변했어. 형이 떠난 이후 03학번 형들 5명이 다 장가를 갔어. 벌써 아들 둘을 낳은 형도 있어. 그리고 내 04학번 동기들도 6월에 2명, 9월에 1명이 장가를 갈 예정이야. 이제 나만 싱글이야. 아마 형이 살아 있었다면 ‘남씨야, 너도 빨리 결혼해야지’라고 말했겠지? 그래도 나이에 떠밀려서 결혼하지는 않으려고 해.
우리나라도 확 바뀌었지. 형이 싫어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이 됐고, 형이 좋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계자라 할 수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 가 있어. 프로야구 SK는 요즘 잘 나가고 있고. 형이 좋아했던 걸 떠올리니 수다를 떨게 되네….
형이 천국으로 갔을 때가 34살이었잖아. 이제 내가 34살이 됐어. 형은 앞으로도 영원히 34살이겠지. 이제 내년이면 형보다 1살을 더 먹게 되는데 형보다 더 어른이 될지는 잘 모르겠어. 천호성지에서 잠들어 있는 형을 바라보면서 ‘형이 너무나도 살고 싶었을 내일을 살고 있는 내가 과연 잘살고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요즘 일이 뜻처럼 되지 않거나 할 땐 욕도 하고 짜증도 많이 부렸는데, 이제 형 생각을 하면서 ‘그래도 나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고 되뇌며 좀 더 웃으면서 살아볼게. 오∼랜 시간 뒤에 형을 만났을 때 떳떳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살게. 지켜봐 줘. 내년 5월에 다시 봐, H형. 사랑해.
남정훈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