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정길연의사람IN] 자활 꿈꾸는 ‘빅이슈’ 판매원 격려를

손쉽게 꺼낼 수 있도록 교통카드 지갑에 5000원권 지폐 한 장을 넣고 다닌다. ‘빅이슈’ 몫이다. 빅이슈 판매원 ‘빅판’은 유동인구가 많은 전철역 입구에서 만날 수 있다. 안면이 익은 빅판과는 가벼운 안부나 파이팅을 주고받기도 한다. 언젠가 “드디어 임대주택에 입주해요”라고 자랑하는 빅판에게 이사선물로 휴지 한 팩을 건넨 적이 있다. 그날은 오히려 내가 그를 통해 기분 좋은 에너지를 듬뿍 충전받았다.

빅이슈는 노숙자 자활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재능기부자들이 참여해 만드는 잡지다. 합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 자립의 기회를 주려는 취지에서 노숙자 지원자에게 잡지의 판매권을 준다. 수익금은 판매대금의 50%다. 자립의 첫 번째 목표는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것. 그러나 거리의 삶을 청산하고 지상의 작은 방 한 칸을 꿈꾸는 전직(?) 노숙자 ‘빅판’에게 드리운 세상의 냉소와 편견은 단번에 걷히지 않는다. 물론 가장 큰 암초는 자포자기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만성적 무기력일 테지만.

원래 대중이 노숙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른 사회적 약자에 비해 온정적이지 않았다. 우선 노숙자를 사회적 약자로 보는 인식이 약하거나 아예 없다. 보통의 선량한 시민에게도 그들은 배려해야 할 약자라기보다 동정의 여지가 적은 자발적 패자, 재기불능의 낙오자로 비칠 뿐이다. 또는 바로 그 순간에도 현실의 급류에 휩쓸리지 않으려 노심초사하는 누군가에게는 노숙자는 외면하고 싶은 공포의 모델일지도 모른다. 시각적 정서적 불편을 야기하는 노숙자 집단을 그저 피하고 싶은 존재로만 대하는 동안, 그들이 사회로 복귀할 가능성은 점점 줄어든다.

살아 보면, 인생은 그다지 공명정대하지 않다. 올곧은 사고와 성실과 인내가 안온한 미래를 보장해 주리라 믿지만, 그 지당한 해피엔딩은 노력한 모두에게 일괄적으로 찾아와 주지 않는다. 악하고 불성실한 나날이 추락이라는 결말로 돌아올 것 같아도, 세상에는 사필귀정의 당위를 비껴가는 일이 허무하게 일어난다. 고장난 자동차처럼 생의 구렁텅이로 굴러드는 어리보기도 있다. 아무려나, 뜻대로 되는 인생은 없다. 누군들 노숙, 지상의 작은 방 한 칸 없는 거리의 삶을 꿈꾸었겠는가.

자포자기와 무기력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죽을 힘 다한 용기를 냈으리라. 죽을 힘 다한 용기를 낸 빅판이 하루빨리 자신의 방을 가질 수 있으려면, 또 한 명의 노숙인이 죽을 힘 다한 용기를 낼 수 있게 하려면, 그늘진 혐의를 걸러낸 순수한 격려가 필요하다. 사랑의 5월 아닌가.

정길연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