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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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시평] 美와 北의 전략적 이익과 절충적 해법

양국 전략적이익 커 판깨지 않을 듯 / 金위원장, 비핵화 신뢰 줄 수 있어야
최근까지 북·미 쌍방간에 일련의 날선 설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곧 다가올 정상회담 개최라는 큰 흐름을 바꿀 정도로 영향이 클 것으로 보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2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다고 발표해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가장 큰 충격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받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동안 살얼음판이긴 해도 나름 게임을 주도적으로 즐기던 김 위원장이 무방비 상태에서 허를 찔려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북한의 고전적 협상전술인 ‘벼랑끝 전술’이 쉽게 먹히지 않는다는 현실을 북한 당국이 깨닫게 되는 순간일 수도 있다.

고성윤 고려대 아세아문제硏 연구위원전 국방硏 국방현안위원장
사실상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이후 북한은 협상 고비마다 전유물인 벼랑끝 전술로 전략적 이익을 취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이번에도 위기를 극대화해 파국을 면하고자 하는 상대방에게 양보를 얻어내려는 익숙한 전술을 구사했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통하지 않았다. 지난 25년간 북한과의 핵협상 역사와 경험을 통해 쌓인 학습의 효과이자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사정권 안에 든 미국 본토 안보에 대한 위기감이 가져온 결과이기도 하다. 김정은식 벼랑끝 전술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소위 ‘미치광이 전술’로 분위기를 일거에 반전시켜 협상주도권을 장악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관심은 왜 트럼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미치광이 전술’이란 카드를 선택했는지 그 배경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해당 당사자를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24일 북한 외무성 최선희 부상이 발표한 담화 내용을 문제 삼았다. 최 부상은 담화에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아둔한 얼뜨기’라고 비난하고 정상회담 재검토를 언급했다. 담화에 뒤이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한 뒤 ‘핵군축’을 언급하면서 북한의 검은 속내가 읽혔다. ‘핵보유국’ 야욕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속내다. 비핵화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어 비핵화에 진정성을 의심받게 된 북한이다. 김 위원장이 중국 다롄에서 시진핑 주석을 만난 후 돌변한 태도로 트럼프 대통령은 심기가 불편한 터에 펜스 부통령을 향해 ‘얼뜨기’라 조롱하고 ‘핵군축’ 운운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태로 본 것이다.

그럼에도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판이 완전히 깨질 것 같지는 않다. 북한 핵을 둘러싸고 북한과 미국이 공유하는 전략적 이익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북한은 비핵화 대가로 김정은정권 안정과 체제보장을 미국으로부터 담보받고 경제적 보상을 상당 부분 취하겠다는 현실적 셈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이 이 점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준 바 있으며, 북한이 비핵화만 하면 대한민국처럼 잘사는 북한이 가능하다는 트럼프 대통령 언급도 있었다.

앞으로 북·미 쌍방이 ‘윈윈’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김 위원장이 솔직하게 비핵화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시간을 벌자는 식으로 사안을 잘게 썰어 가면서 주고받겠다는 단계별 타결을 고집하거나 더 이상 ‘군축협상’ 운운하는 얕은수를 접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도 ‘리비아식 모델’이란 말을 거뒀고 절충점을 찾자는 여운을 남기지 않았는가.

이와 관련해 문재인정부는 미국과 보조를 맞춰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는 절충안이라고 할 수 있는 3단계 일괄타결 해법에 대한 논리를 나름대로 구축하고 이를 북·미 양국에 설득시킬 필요가 있다. 1단계로 북한이 핵·미사일에 대한 정확한 자산목록을 제출하도록 해야 하며 이를 근거로 종전선언을 하는 것이다. 2단계에서는 전문가에 의한 현장조사를 완료한 후 신뢰가 확보되면 경제제재를 해제하고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도 해제하는 일이다. 마지막 3단계에서는 핵·미사일 불능화 조치를 하고, 불능화가 확인되면 북·미 불가침조약과 수교의 과정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적 외교관계로 확대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전 과정을 1년 이내 일괄타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에 이를 수 있다. 장기화할 경우 비핵화도 김정은의 체제 안정도 자신할 수 없는 변수가 많다.

고성윤 고려대 아세아문제硏 연구위원전 국방硏 국방현안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