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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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행정처, 청와대 눈치 보고 재판개입·판사사찰…수술 불가피

김명수 대법원장 '사법부 블랙리스트' 조사보고서 검토·개혁 구상
행정처 기능 최소화·견제기구 설치 전망…재판개입 방지 시스템도 추진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조사결과에서 법원행정처가 사법부 독립을 크게 해친다는 우려를 낳을 정도로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 파악되자 대대적 조직개편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조사를 통해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을 사찰하고, 재판을 협상 도구로 삼아 사법 현안에 대한 청와대의 협조를 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사법부는 행정처 권한을 대폭 줄이고 견제 장치를 두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전망된다.

27일 법원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조만간 3차 조사결과에 따른 후속조치로 법원행정처에 대한 대대적 개편방안과 사법정책 추진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재판독립 침해를 방지할 대책 마련에 착수할 방침이다.

지난 25일 오후 조사결과를 보고받은 김명수 대법원장은 주말 동안 조사보고서를 꼼꼼히 정독하면서 지난해 9월 취임 후 추진해 온 사법제도 개혁 과정 전반을 돌아보고, 향후 보완할 사항을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법원장의 향후 사법제도 개혁구상은 법원행정처를 개편하고 재판독립을 침해하는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법원행정처 개편과 관련해서는 기존 업무 중에서 재판지원 업무를 제외한 기능은 최소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취임 초부터 재판 중심의 사법부를 강조했던 김 대법원장은 이번 사태의 원인이 법원행정처의 막강한 권한 때문이었다는 점에 동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법원행정처의 인사 기능이나 사법정책 추진·기획 기능 등은 최소한만 남겨둘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청와대나 국회 등을 상대하는 대관업무가 언제든지 재판독립을 침해하는 행위로 변질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조사로 확인된 만큼 관련 업무 체계 개편도 뒤따를 것으로 관측된다.

법원행정처 차장이 국회·청와대 등과 접촉하면서 행정처 기획조정실을 마치 '별동대'처럼 활용한 정황도 드러난 만큼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들처럼 행정처에서 근무하는 판사들의 독립성도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조직이므로, 기능을 축소하는 것과 더불어 견제 기관을 둘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장 적합한 대안으로는 각급 법원의 대표판사들로 구성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행정처 업무를 수시로 감시·통제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폐쇄적이고 관료적인 법원행정처 조직을 바꾸려면 판사들이 아닌 일반 법원 공무원들이 행정처 주요보직을 담당하도록 직위개방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사법연수원 기수로 엮인 판사들이 모여 있는 행정처 조직의 일부를 법원 공무원에게 개방하면 행정처 사무를 투명화할 수 있고, 법원 내부의 다양한 의견수렴과 소통이 가능해져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김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 개편과 함께 재판독립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점검에도 착수할 전망이다.

우선 사법행정 담당자가 일선 법원의 재판과 관련해 지켜야 할 준수사항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준수사항을 지켜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급자가 준수사항과 다른 지시를 내리면 이를 거부하도록 하는 내용도 지침으로 마련할 가능성이 있다.

대법원은 재판독립을 침해하는 행위가 이미 발생했다면 뒤늦게라도 시정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작업도 진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법원 내부 구성원들이 수시로 재판독립과 관련된 사안을 논의하는 시스템도 만들 것으로 전망된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