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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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낙태금지 헌법조항 35년 만에 폐지

국민 대다수가 가톨릭신자에도/66% 찬성 투표… 종교계 영향 관심/당국 조만간 하원에 입법안 제출
국민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인 아일랜드가 국민투표를 통해 낙태 금지를 규정한 헌법 조항을 35년 만에 폐지하기로 했다. 가톨릭 교회는 여성의 낙태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어, 이번 결과가 종교계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아일랜드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수정헌법 제8조 폐지 여부를 놓고 시행한 국민투표에서 찬성 66.4%, 반대 33.6%로 집계됐다고 26일 밝혔다. 이번 국민투표는 아일랜드 40개 선거구에 속한 유권자 336만명을 대상으로 했고 투표율은 64.1%를 기록했다.

아일랜드 수정헌법 제8조는 임신부와 태아에게 동등한 생존권을 부여하며 낙태할 경우 최대 14년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 조항이 낙태를 너무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자 아일랜드 의회는 2013년 임신부의 생명에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해 낙태를 허용토록 했다. 그럼에도 수정헌법 제8조 발효 이후 약 17만명이 영국 등으로 ‘낙태 원정’을 간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국민투표는 레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가 지난해 선출되면서 공약으로 내건 사안이다. 그는 투표 결과가 사실상 낙태 허용 쪽으로 기울자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아일랜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용한 혁명의 정점”이라며 “민주주의에서 아주 훌륭한 권리 행사”라고 밝혔다.

아일랜드 정부는 이번 투표 결과를 토대로 조만간 하원에 입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입법안에는 임신 12주 이내 중절수술에는 제한을 두지 않고, 12∼24주 사이엔 태아 기형이나 임신부의 건강 또는 삶에 중대한 위험이 미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중절수술 시행 전 사흘간 재고할 기회를 주며, 의료진의 개인적 신념 등과 배치되는 경우 다른 의사에게 환자를 맡길 수 있도록 했다.

정선형 기자 linea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