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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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최저임금과 일자리 창출의 역설

취업자수 3개월째 10만명대 / 가계소득도 저소득층만 감소 / 두 정책 사실상 양립 어려워 / 우선순위 신속한 수정 나서야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효과는 경제학의 오랜 논쟁거리다. 최저임금 정책의 ‘상징’과도 같은 미국 시애틀에서도 여전히 고용 효과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시애틀은 올해 미국 대도시 가운데 처음으로 시간당 최저임금 15달러 시대를 열었다. 지난 3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은 54.8%에 달한다. 워싱턴대 연구팀에 따르면 시애틀의 2016년 최저임금 인상(전년 대비 32%)으로 19달러 이하 저임금 노동자의 고용은 오히려 악화했다. 노동시간은 9.4% 감소했고, 고용도 6.8% 줄었다. 임금 상승률은 3.1%에 그쳤다.

안용성 경제부 차장
반대의 목소리도 높다. 2016년 시애틀 지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3.7%에 달했다. 이는 미국 전체 경제성장률(1.5%)의 두 배 이상이다. 또 시애틀의 치솟는 물가를 떠받칠 수 있었던 것은 최저임금 인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주장이다.

2018년 한국도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싸고 논쟁이 치열하다.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오른 올해부터 각종 고용지표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무엇보다 저임금 노동자의 일자리 감소가 심각하다.

최저임금 적용 노동자가 몰려 있는 숙박 및 음식업 취업자 수는 9개월째 내리막을 걷고 있다. 전체 취업자 수 증가폭도 3개월 연속 10만명대에 그쳤다. 이 와중에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과 산입범위를 놓고 노사 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최저임금을 올렸다고 가계소득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1분기 가계소득은 저소득층에서만 곤두박질쳤다. 반대로 최상위 계층의 소득은 월 1000만원을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최저임금 탓에 저임금 일자리가 사라지고, 근로소득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이 ‘5분위’(소득 상위 20%)를 위한 것이냐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일관성 없는 행태에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최근 고용문제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것이 아니다”고 했다. 비판이 일자 김 부총리는 “상반기 안으로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분석해 내놓겠다”고 한걸음 물러섰다. 그러다 “경험이나 직관으로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과 임금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한다”고 말을 뒤집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180도 바뀐 셈이다.

한발 더 나가 최근 김 부총리는 최저임금 인상에 ‘속도 조절’을 이야기하고 있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린다는 계획에 집착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거나 쉽지 않다면 신축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과는 상충하는 말이다.

이제야 정부는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분석에 나섰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시행할 정부가 경제 효과에 대한 아무런 데이터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스스로 무능을 자인한 셈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우리 경제 전반에 실질적 영향을 끼친다. 특히 영세 자영업자, 임시·일용직 등 저소득층의 일자리와 직결돼 있다는 건 분석이 아니어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분석 후 정부의 발언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최저임금 인상이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애초 최저임금 인상과 일자리 창출은 양립하기 어려운 정책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기업의 고용비용을 증가시킨다. 코스트가 늘어난 기업은 고용을 축소하게 마련이다. 경기가 호황을 보이거나 재정의 이례적 투입이 동반하지 않는 한 일반적인 흐름이다. 맞지 않는 두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삐걱 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

선택은 두 가지다. 김 부총리 언급대로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하든지, 일자리 정책의 우선순위를 수정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일자리의 질을 끌어올리는 정책으로, 단기간 발생할 수 있는 고용축소를 국민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일자리 숫자에 집착하다 보면 질 나쁜 일자리를 쏟아냈던 과거 정권의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

경제정책은 실험의 대상이 아니다. 실험의 실패가 가져다주는 충격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경제정책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 신속한 수정이 필요한 이유다.

안용성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