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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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자주포 폭발로 꿈 날린 청년, 국가 치료도 어렵다니

군 훈련 사고를 당한 20대 청년 이찬호씨의 억울한 사연으로 여론이 들끓는다. 이씨는 지난해 8월 강원도 철원에서 발생한 K-9 자주포 폭발 사고로 온몸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고 얼굴에 심한 골절상까지 당했다. 이씨는 어린 시절부터 키워온 배우의 꿈을 접었다. 앞으로 수년간 매달 수백만원 드는 전문 치료도 받아야 한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국방부가 치료비 지원에 관해 모호한 답변만 되풀이해 이씨와 그 가족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는 점이다.

이씨의 답답한 사정은 병원비 부담 때문에 지난달로 예정됐던 전역을 일차 연기했던 데서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군인 신분이면 치료비가 전액 지원되지만 전역하면 국방부 지원이 보장되는 6개월 후에는 보훈심사를 통과해야 해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탓이다. 장기간 화상전문 치료가 필요해 민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온 이씨와 그 가족은 쉽게 전역을 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씨는 최근 전역했다. 이씨 가족은 어제 언론 인터뷰에서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 있는 이 문제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전역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자주포 사고 때 3명이 숨졌고 이씨 등 4명이 다쳤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당시 “불의의 사고를 입은 장병들은 국가가 책임지고 후속 조치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지난해 부상 전역병의 장애보상금 인상, 진료선택권 보장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군인재해보상법을 제정했다. 국방부는 “불의의 사고로 부상을 입은 병에 대한 보장금만은 확실히 높이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지난해 약속과 홍보가 무색하게도 현행 제도는 여전히 구멍과 허점투성이다. 정부가 2015년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사건 때 밝힌 ‘지뢰부상 장병 국가 지원’ 약속도 온전히 지켜지는지 의문이다.

이씨 사연을 담아 국가유공자 지정을 요구한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한 동의가 지난 주말 20만명을 넘어섰다. 20대 청년의 아픔에 답하지 못하는 한심한 현실에 분노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정부가 이번에는 분명하게 답해야 한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예우하기는커녕 치료조차 제대로 해주지 못하면서 어떻게 국가에 대한 헌신을 입에 올릴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