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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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의 회화적 가능성을 탐구하다… 캔버스 프레임을 깨는 이열 작가

거울작업을 통해 캔버스 프레임을 넓혀가고 있는 작가가 있다. 거울을 새로운 생성공간으로 접수하고 있는 이열(홍익대 교수) 작가다.

“오래된 거울에는 누군가를 비추고 반영한 세월과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있다. 그것은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거나 상처를 암시하는 것 같았다. 거울은 또 다른 생성(生成)의 마당이자 증식(增殖)의 공간이다. ‘배꼽에 어루쇠를 붙인 것 같다’는 우리의 옛 속담은 배꼽에 거울을 붙이고 다녀서 모든 것을 환희 비추어 본다는 뜻이다. 비록 요술경은 아니더라도 거울은 세상을 보는 또 다른 표현의 창구가 될 것 같다.”

그는 거울 뒷면을 부식시키거나 도구로 긁어 행위를 기록한다. 이미 시간은 그 물질 자체에 기록되어 있기에 다른 행위는 절제한다. 거기에 빈티지 액자가 어울리면 끼운다. 아니면 거울 그대로 내놓거나 혹은 투명한 천으로 2~3겹을 붙여서 거울의 반영을 부드럽게 만든다.
“언제 부터인가 자연스럽게 그동안 그려온 캔버스와 안료로 이루어진 그림의 프레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수 십년간 추구해 온 전통회화를 벗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반사의 매개체인 거울을 이용하고자 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수년전이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아주 오래전의 기억과 적지 않은 관련이 있다. 어느 날 어머니가 경대 앞에서 분을 바르고 계시는 모습을 어머니 등 뒤 어깨너머로 본 거울에 비친 어머니 얼굴과 나의 얼굴이 작은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신기함으로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새로운 재료에 대해 관심이 커져 있는 터에 아는 지인과 함께 철수하는 미군부대에서 눈에 띄어 낡은 거울을 구입하게 되었다. 거울은 자연스럽게 어렸을 적 화장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본능적으로 나의 작업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그는 본격적인 거울작업을 하기 위해 파리에서 벼룩시장을 누비며 오래된 액자와 오래된 거울을 구입하여 거울이라는 매체와 속성을 파악하고 회화적 가능성을 실험해 왔다.

“그동안 추구해왔던 나의 작업이 크게 변화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거울이라는 재료에서 차이를 보일 뿐이다. 나는 화가로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어떻게 가시화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성공간 (生成空間)’이라는 주제로 오랫동안 작업해왔다. 거울이나 유리가 지닌 속성은 캔버스 천과 안료로 구성된 전통회화와는 매체나 표현방식이 확연히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거울표면의 부식과 얼룩을 이용하기도 하고 드로잉과 몸짓을 추구하여 거울의 시간과 일체화(一體化)하는 작업을 추구해 왔다. 그것은 구상이기도 하고 추상이기도 하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드러내는 또 다른 생성공간이다.”

사실 거울의 얼룩이나 부식을 이용한 방식이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다.

“거울작업은 오랜기간 작업하는 동안 나를 흥분시키고 설레게 했다. 앞으로도 이러한 거울작업이 자유로운 나를 찾는 길이고 또 다른 세계를 향한 도전이며 모험이다.” 30일까지 노화랑.
 
편완식 객원미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