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고재현의세상속물리이야기] 자외선의 두 얼굴

햇볕 강해지는 봄∼가을엔 ‘피부의 적’ / 오존층 형성… 생명체 번성 ‘일등공신’
한낮의 햇볕이 강해지는 요즘, 높은 자외선 지수를 경고하는 날씨 예보도 잦아졌다. 자외선 지수가 높을수록 지면에 도달하는 자외선 복사량이 많아진다. 자외선은 사람의 눈이 볼 수 없는 ‘빛’이다. 정확히는 전자기 파동이라는 현상의 일부분이다.

파동은 어떤 속성이 진동하면서 에너지를 동반해 퍼져나가는 현상이다. 음파는 공기라는 매질이, 수면파는 물이, 지진파는 땅이 진동하며 일정한 속도로 전파되는 파동들이다. 전자기파의 경우엔 전기장과 자기장이 동시에 진동하며 1초에 30만km라는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간다. 이 속성들이 한 번 진동하며 나아가는 거리를 파장이라 하는데, 전자기파는 파장에 따라 분류된다.

빛을 파장별로 나누는 방법은 프리즘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우리 눈은 백색광이 프리즘에 굴절되면서 퍼지는 빨간색에서 보라색에 걸친 가시광선만 지각한다. 1801년 독일의 물리학자 리터는 가시광 스펙트럼의 보라색 바깥에 놓인 염화은 종이가 변색되는 걸 확인하고 그곳에 화학적 작용을 일으키는 자외선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사실 전자기파 스펙트럼은 이보다 훨씬 다양해서 전파, 마이크로파,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 엑스선, 감마선 등을 모두 포괄한다.

자외선은 가시광선 중 파장이 가장 짧은 보라색(violet) 너머(ultra-)에 위치하므로 영어로 울트라바이올렛(UV)이라 부른다. 자외선은 생물학적 영향에 따라 파장이 긴 UV-A, 중간 파장의 UV-B, 파장이 짧은 UV-C로 구분한다. 전자기파는 파장이 짧을수록 에너지가 높다. 강한 살균력을 지닌 UV-C는 지구 대기권이 완벽히 차단하지만 피부에 홍반을 만들거나 백내장을 유발하기도 하는 UV-B는 10% 정도가 살아남아 지면으로 내려온다.

따라서 자외선 지수는 지면의 자외선 스펙트럼과 자외선의 각 파장에 대한 사람 피부의 반응성, 특히 홍반 형성의 반응성을 고려해 계산된다. 홍반 형성의 반응성은 파장이 짧을수록 커지나 지면에 도달하는 자외선의 복사량은 파장이 짧을수록 급격히 줄어들기에 자외선 지수를 결정하는 파장 대역은 주로 UV-B가 된다.

자외선 지수는 인간 피부에 변색을 일으키는 자외선의 세기에 선형으로 비례한다. 자외선 지수가 0이면 자외선 복사가 전혀 없다는 의미고, 10이면 맑은 날 한낮 여름의 태양빛이 지표면에 만드는 자외선 복사량에 해당한다. 자외선 지수의 실제 계산에는 태양 고도와 거리, 성층권 오존의 상태, 구름의 상태, 공기 오염, 지면 고도 등을 모두 고려한 컴퓨터 모델이 활용된다.

이처럼 자외선은 늦은 봄부터 초가을까지 기피대상이 되지만 사실 자외선은 인간의 생활과 기술 혁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형광등은 내부에 자외선을 먼저 만들고 이를 가시광으로 바꾼다. 살균력이 강한 UV-C를 방출하는 수은등은 각종 살균기나 정수장에서 폭넓게 활용된다.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좁은 선폭을 구현하는 공정에도 자외선 광원은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자외선은 성층권에서 산소분자를 오존으로 변환시켜 오존층을 형성해 지상을 강한 자외선의 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해 왔다. 오존층이 없었다면 생명체의 육상 진출이 힘들었을 터, 이를 만들어 낸 자외선이야말로 지구상의 생명체 번성과 인류 출현의 일등공신이 아니었을까.

고재현 한림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