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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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후 농촌이 사라진다] 주민 44%가 65세 이상 고령… “우리 죽으면 마을 없어질 것”

1회-8년째 아이 울음 끊긴 전남 화순 산음마을 / 30년 전만해도 100명 살던 마을…광업소 문 닫자 하나둘씩 떠나 / 수십년 방치 빈집, 흉물로 변해 / 농번기인데도 들녘에 인적 ‘뚝’ / 농사 말고는 안정적 일자리 없어 / 출산 가능한 젊은이 유입 안 돼 / 협동조합 등 일자리 창출 시급
화순군 오옴리에 수년째 방치되고 있는 빈집. 화순군에서 붕괴 위험이 있어 출입을 금지하는 표지판을 붙여놨다.
광주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전남 화순군 한천면 오옴리 2구 산음마을. 지난달 30일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폐가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10년 전에 60대 부부가 화순읍으로 이사하면서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이다. 마당에 잡초가 무성해 발을 들여놓기 어려웠다. 문짝은 떨어져 나가고 방안에는 폐자재만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 마을 주민 복모씨는 “이 집이 폐가가 됐지만 일제강점기에 지은 것으로 100년이 넘었다”며 “30년 전만 해도 이 작은 집에 일가족 10명 정도가 살았다”고 회상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100년 넘은 집이 3∼4채 더 있었다. 모두 십수년씩 사람이 살지 않아 흉물로 변했다. 이날 마을을 지나는 도로에는 오가는 사람도 없고 농번기인데도 들녘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산음마을은 불과 30∼40년 만에 쇠락해 적막감마저 들었다.

◆심각한 초고령화

산음마을에 아이 울음소리가 끊긴 지는 8년이 됐다. 이 마을에는 22가구 27명이 산다. 65세 이상이 12명으로 고령화율이 44%에 달하는 초고령 마을이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가임여성은 2명이지만, 더 출산 계획이 없다. 장가를 가지 않은 미혼 남자는 30대 중반의 마을청년회장 1명뿐이다. 마을청년회장이 장가를 가지 않는 한 이 마을에서 다시 아이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

한천면은 지난해 아이가 한명도 태어나지 않은 전국 17개 읍·면·동 중 한 곳이다. 이들 지역의 공통점은 가임여성의 절대 부족과 초고령화 마을이라는 점이다. 출산율 ‘0’을 기록한 읍·면·동은 2012년 3곳에서 2014년 8곳, 2016년 14곳으로 가파르게 늘어난다.

한천면의 인구 구조를 보면 당분간 출산율 ‘0’의 기록을 깨기는 쉽지 않다. 지난해 한천면 전체 인구 1399명 중 65세 이상이 603명으로 43%에 달한다. 고령화보다 더 심각한 것은 가임여성이 적다는 점이다. 여성 692명 중 15∼49세의 가임여성은 134명으로 19%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한천면에서 최근 6년간 낳은 신생아는 고작 13명이다. 
농촌의 저출산율은 20가구 미만의 ‘과소화 마을’이 느는 원인이 된다. 농촌마을의 과소화는 읍·면 과소화를 거쳐 시·군 과소화로 이어지면서 농촌사회의 붕괴를 불러온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에 따르면 2018년을 기점으로 전국의 ‘읍’지역 인구가 ‘면’지역 인구를 초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읍지역의 붕괴에 이어 시·군 소멸이 상당히 빠르게 진행한다는 점을 뜻한다.

한천면은 이제 마을 소멸을 걱정해야 할 위기에 놓였다. 지방 소멸을 주창한 일본 마스다 히로야의 인구소멸지수(고령화 인구 대비 가임여성 비율)를 한천면에 대입해 보면 ‘0.22’가 나온다. 0.20미만은 소멸고위험지역으로 30년 안에 마을이 소멸할 수 있다는 수치다. 한천면이 이 소멸수치에 거의 와 있다.

주민 김모씨는 “우리 노인네들이 10∼20년 안에 다 죽으면 이 마을도 없어질 것”이라며 “우리의 대를 이을 아이들이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인구 유입 해법은 안정적 일자리

산음마을은 산간 오지나 벽지가 아니다. 대도시인 광주 근교에 있다. 도시와 가깝고 환경이 쾌적해 얼마든지 도시민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현재 사는 20가구의 절반가량은 토박이가 아닌 외지인이다. 산음마을은 30년 전만 해도 100명 이상이 살던 큰 마을이었다. 인근에 1968년 화순광업소가 들어서면서 덩달아 인구가 늘었다.

그러나 1992년 탄광이 폐광되면서 마을 인구는 크게 줄었다. 광업소 일로 생계를 유지하던 인부들은 일거리가 없자 하나둘씩 마을을 떠났다.

화순군은 최근 마을 소멸을 막을 방안을 마련했다. 다른 지자체와 마찬가지로 귀농자의 집을 마련해 주거나 농사지을 땅을 임대한다.

영농자금도 저리로 융자해 준다. 하지만 인구 유출 방지와 유입에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귀농·귀촌자가 터를 잡고 살아가는 데 필수요건인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어서다.

산음마을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젊은 사람들을 끌어들일 만한 소득원이 없다는 점이다. 한천면 인구 담당자는 “산음마을의 주소득원은 복숭아와 자두 등 소규모 과일과 논농사로 청년층의 정주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마을 소멸을 막는 유일한 해법은 농촌형 일자리 창출이다. 충남 홍성군 장곡면 협동조합이 대표적인 사례다. 협동조합은 마을에 필요한 시설인 식당과 도서관, 만화가게 등을 만들고 주민들이 운영하는 일자리를 만들었다. KRIE 김정섭 박사는 “면 소재지에 식당이 없어 사무소 직원들도 끼니 걱정을 했는데 지역민들이 협동조합을 결성해 필수시설을 운영하면서 일자리 창출과 소득을 올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30년내 지자체 84곳 소멸 위기

‘마스다 지표’라는 게 있다. 일본 마스다 히로야 일본창성회의 대표가 2014년 내놓은 인구소멸지수다.

20∼39세의 가임여성 수를 65세 이상 고령 인구로 나눠 나온 값이 인구소멸지수다. 마스다는 1.0 미만은 쇠퇴 시작 지역, 0.5 미만은 소멸위험 지역, 0.2 미만은 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했다. 당시 마스다 지표를 적용한 결과 일본의 시·정·촌 49%가 15년 후인 2040년에 기능을 상실할 것으로 나와 일본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박사가 지난해 마스다 지표를 국내 자치단체에 적용해 봤다. 우리나라도 일본과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전국 228개 시·군·구 중 84곳이 소멸위험 지역으로 분류됐다. 3400여개 읍·면·동 중 1383곳에는 빨간불이 들어왔다. 30년 안에 지자체 84곳과 읍·면·동 1383곳이 사라진다는 얘기다.

전남이 전체 22개 시·군 중 17곳에 소멸 빨간불이 켜졌다. 경북(23곳)과 경남(18곳)도 각각 16곳과 11곳으로 절반을 훨씬 넘었다. 전북은 14개 시·군 중 10곳이 위기상황으로 나왔다.

이들 소멸위험 지역의 공통점은 가임여성 인구 비중이 작고 고령 인구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국내의 젊은 여성인구 비중이 크게 줄어 인구소멸 위험은 더 빨라질 수 있다. 2004년 20∼29세 여성인구 비중은 16.9%로 65세 이상 고령 인구(8.3%)의 2배다.

하지만 2015년 여성인구는 13.4%, 고령 인구는 13.1%로 비슷해졌다. 이 수치는 우리나라 인구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방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런 변화까지 일본은 16년, 미국은 21년이 걸렸다. 반면에 한국은 1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전국 20개 시·군은 젊은 여성인구의 비중이 겨우 6%였다.

글·사진 화순=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