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가 2016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거친 언사를 비판하며 했던 말이다. 이 한마디는 이후 ‘품위 있는 분노’의 전형으로 평가된다. 각종 네거티브가 난무하는 선거에서 상대를 기품 있게 압도하며 자신의 인격을 지키는 방법이 무엇인지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품위 있는 대꾸도 아까운 경우가 있다. 한여름을 방불케 할 만큼 더워져 짜증지수도 덩달아 오른 요즘 같은 때라면 더욱 그렇다. 몇 주 전, 퇴근 길 국회 앞에서 있었던 한 아주머니와의 언쟁이 그랬다. 저녁 약속 시간에 늦어 잰걸음으로 국회를 빠져나가던 나는 뒤에서 “야! 야, 어디가”라는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설마 날 부르는 소리일까 해서 뒤돌아 본 순간 어떤 중년 여성이 소리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내게 ‘지하철 어디서 타느냐’며 다짜고짜 질문인지 호통인지 모를 말들을 늘어놓았다.
김민순 정치부 기자 |
그래도 마음 한구석 찜찜한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기본적인 예의를 갖춰 달란 요구를 했을 뿐인데, 그가 그토록 화가 났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이런 일은 도처에 수두룩했다. ‘어디로 가? 여기로 들어가?’냐며 막무가내로 반말을 하는 택시기사나, 결혼 후 아이가 없는 내게 ‘서른이면 노산이다. 요즘 난임이 많다던데 너도 그런 거냐’며 반갑지 않은 관심을 보이는 친구들이 그렇다. 어디까지가 세련된 대응이고, 정당한 반박인지 혼란스러운 경우가 적지 않다. 몇 차례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불쾌감은 왜 늘 나의 몫이 되는지 억울하기까지 했다.
이후 나는 택시기사의 반말에는 반말로 응수하기로 했다. 대부분 말투를 바로잡거나, 순식간에 예의를 갖춘다. 조각 같은 추억을 무기로 내 삶에 멋대로 끼어드는 관계는 과감히 정리했다. 직장과 출입처 등에서 들은 각종 막말은 따로 기록해두거나 저장한다. 이런 과정에서 분노는 가라앉고, 감정은 차분해졌다.
저급하고, 예의 없는 태도에 일일이 내 감정을 쏟을 순 없다. 매번 교양을 갖춘 대처를 하는 것도 꽤나 수고스러운 일이다. 나 혼자 ‘품위있는 그녀’가 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상대방의 무례함으로 밤잠을 설친 적이 있다면, 상대는 아무렇지 않게 뱉은 말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면 이번엔 그냥 한번 가보는 건 어떨까. 내 방식대로 말이다.
김민순 정치부 기자